탯줄도 잘리지 못한 새끼 강아지 사체가 바닥을 나뒹굴고, 배 밖으로 장기가 튀어나온 사체는 언제 죽음을 맞이했는지 모를 정도로 부패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뜬 장에 갇혀 사체 옆을 벗어날 수 없는 개는 겁에 질린 듯 맹렬히 짖어댔으나, 성대 수술로 인한 쇳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오랜 뜬 장 생활 때문인지 네 발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현장에서 발견한 새끼 강아지의 사체
뜬 장을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상처투성이 발
글만으로도 느껴지는 참혹한 현장, 지난 5월 1일 동물자유연대가 마주한 고양시 덕양구 불법번식장의 현실입니다. 2차, 3차 인공수정 내역이 빼곡히 적힌 뜬 장 앞 나무 판자와 버려진 의료용 주사기는 명백한 불법 번식의 증거였으며, 내장이 튀어나온 사체, 불어난 젖, 앞도 제대로 볼 수 없을만큼 엉켜버린 털은 개들의 방치된 지난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즉각 관할 경찰서와 고양시청에 동물학대 및 불법 번식장 운영에 대한 신고를 넣었고, 현장에서 번식업자와 격렬히 대치하였습니다.
같은 뜬 장에서 배가 터진 사체 옆을 벗어나지 못한 채 겁에 질린 모견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미와 새끼들
모두의 간절한 바람으로 살려낸 고양시 불법 번식장 개들
고양시에서 수년 간 미허가 동물생산업을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번식업자는 해당 불법 번식장을 국방부 소유의 국유지 및 개인 사유지에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신고 초반, 불법 번식장 내부 개들에 대한 지자체의 격리 조치가 늦어지며 사건 대응 초기 골든타임을 놓쳐버렸고 동물자유연대는 5월 2일 아침부터 번식장 앞에서 보초를 서며 한 시도 이곳을 떠나지 않고 개들을 지켰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동물자유연대 SNS를 통해 시민 여러분께 사건을 알렸고, 수 백 명의 시민들께서 소중한 생명을 살리고자 민원 및 댓글 등을 통해 관할 지자체의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해주셨습니다.
연휴 내내 이어진 시민 여러분의 간곡한 호소에, 그 다음날인 5월 3일 고양시청에서 현장을 방문해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과 함께 업주와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수많은 시민 여러분의 간절한 바람이 모인 끝에 어제 시간 기준 국유지 및 사유지에 남아있던 총 52마리 중 업자가 23마리의 소유권을 포기, 동물자유연대가 고양시청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었습니다.
5월 1일 현장 방문 첫날, 활동가들이 국유지 및 사유지 포함 총 80여 마리의 개들을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오전 국유지 내 50마리 개들이 37마리로 감소한 것을 확인하며 업자가 하룻밤 사이 개들을 타지로 이동시킨 사실이 강하게 의심됐는데요. 현장 발견 당시 지자체의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골든타임을 놓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난 3일간 시민 여러분의 끈질긴 요구가 있었기에 오늘 동물자유연대는 우리가 살려야만 했던 개들 중 23마리 이상의 귀중한 생명을 우선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간절한 요구와 외침이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개들의 행방을 더는 쫓지 못했을 수도, 오늘 23마리 개들에게 새 삶을 찾아주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고양시청과 함께 오늘 구하지 못한 나머지 개들을 끝까지 추적하고, 업자가 주장하는 양주 합법 번식장의 소재 확인과 함께 해당 사건을 계속 모니터링 할 것이며 그 과정을 시민 여러분께 자세히 전달 드리겠습니다.
생명보다 우선시 되는 개인의 소유권, 그리고 여전한 법의 한계
동물자유연대는 이번 고양시 불법 번식장 사례를 통해 무엇보다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느낀 바입니다. 지난 2016년 강아지 공장 실태로 동물생산업이 허가제가 되고, 1,777개 동물생산업소가 지자체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 또는 건축법의 요건을 맞추느라 아주 작은 규모의 시설에 생산업 허가를 받고, 다른 장소에 불법 시설을 만들어 마치 합법과 같이 운영을 하는 문제들이 적발되고 있습니다. 이번 고양시의 사례에서도 업자는 현재 본인이 양주에서 허가 받은 생산업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는데요. 사실 여부는 고양시청과 함께 확인 중에 있으나, 합법 영업장을 마련한 후 불법 번식장도 함께 운영하는 꼼수 영업을 하고 있음이 여실히 들어난 셈입니다.
게다가 불법 영업이 적발되어도 고작 최고 500만 원에 그치는 벌금은, 소위 '개 서너 마리를 팔면 얻을 수 있는 소액'이라 업자들은 적발될 때까지 버티기도 합니다. 물론 합법의 모양새를 갖춘 업체라면 적발 또한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현행 동물보호법 제38조(등록 또는 허가 취소 등)에 등록을 하거나 허가를 받은 후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해당 영업을 하는 경우 등록 또는 허가를 취소하도록 추가하고, 무허가 생산업장에 대한 벌금 500만 원을 1,000만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이 반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동물자유연대가 고양시 불법 번식장에서 업자의 소유권 포기를 통해 구조한 23마리와 건강 이상으로 현장에서 추가 구조한 개들은 외부 위탁 보호소와 동물병원에 분산하여 치료 및 보호 중에 있습니다. 구조된 개들 모두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면서도, 정작 뜬 장의 문이 열리자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며 켄넬 안에서도 온 몸을 덜덜 떨었는데요.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삶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에 활동가들은 구조를 진행하면서도 끝없는 안타까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보호소의 드넓은 잔디 위에서 태어나 처음 땅을 밟아보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을 내딛는 개가 있는가 하면, 켄넬 문이 열리자마자 귀를 날리며 달리는 개도 있었습니다. 평생을 번식의 도구로 이용 당하며 살아왔음에도 모두 사람을 좋아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이던 이 개들도 이제 보통의 반려견들처럼, 깨끗한 물을 먹을 수 있고 평평한 바닥을 밟을 수 있습니다. 뜬 장에서 발바닥이 갈라지고 말라붙은 오물을 밟아가며 살아야만 했던 삶은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구조 진행과 동시에 고양경찰서를 통해 업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고발 진행 상황 또한 추후 시민 여러분께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간절한 외침에 고양시 불법 번식장의 소중한 생명들이 자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동물자유연대는 오늘 구조된 개들의 치료를 진행하는 동시에 미처 구하지 못한 개들의 행방을 쫓고, 여전히 존재하는 동물보호법 상 생산판매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목소리 높이고 행동하겠습니다. 그 길에 시민 여러분의 지지와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김정희 2020-05-07 17:41 | 삭제
정말 고맙습니다.. 글을 읽는데 왜 울컥하는지. 아직도 법은 멀었고 수맣은 아이들을 지키는건 힘든 일인것 같아서.. ㅠ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