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사태에 대한 동물•환경 단체 공동 기자회견문]
새들이 죽어가는 2014년,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AI의 발생과 확산을 모두 철새 탓이라 떠넘기는 방역당국 무책임하다-
-가금류 대학살에서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생명경시 도를 넘었다-
-동물의 복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축산과 방역체계 전면 개정해야 한다-
2014년에도 AI는 전국으로 퍼지고 말았다. 280만 마리의 가금류들이 예방차원이란 명목으로 살처분 되었고, AI 발생과 확산의 책임을 뒤집어 쓴 철새들은 쫓기고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가금류의 대학살과 야생철새에 대한 학대에서 성찰하지 못하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몇 년 후 똑 같은 고통이 반복될 것 같은 데자뷰가 끔찍할 뿐이다. 아니 오늘 조류들이 당하는 고난이, 내일 인간의 것이 되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더 키우게 된다. 동물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태도가 한국의 품격이고, 지속가능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살처분에 적용할 동물복지 기준과 장비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는 지난 16일 전북 고창 오리 농장의 AI 발생을 시작으로 AI 발생 21일 만에 약 280만 마리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예방이란 명목으로 살처분 대상을 감염 발생농가 반경 500m에서 3km로 확대하고 의심농가까지 살처분을 진행하면서 마치 살처분만이 이번 AI사태를 해결하는 중요한 방책이며 방역을 위한 최선인양 발표하기 바쁘다.
그러나 살처분 과정에서 동물의 고통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살처분 담당 공무원조차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에 따른 살처분 기준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살처분 과정이 촬영된 영상을 통해 오리가 살아있는 채로 자루에 담겨지는 모습, 매몰 전 차량 컨테이너 안에 오리들이 빠져나오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방영되면서 죽음을 확인 후 매몰해야하는 최소한의 배려도 지켜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2003년 국내에서 AI가 처음 발생 하고 2-3년 주기로 4차례 AI가 발생하면서 총 2천 5백여 만 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 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인도적인 살처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국 및 전 세계 178개국이 가입해 있는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규약에 따르면 동물 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 과정에서 동물복지는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그러나 국내 동물보호법 및 AI 긴급행동지침 상에는 도살 시 고통을 최소화하라는 지침만 나와 있을 뿐 살처분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동물복지 저해요인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OIE 가입국으로써 최소한 국제적 기준에 따라 살처분 방법을 수립하고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반복되는 비인도적인 살처분에 대한 국민들의 개선 요청에 정부는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동물 전염병 발생 시 살처분에 적용할 동물복지 기준과 관련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공장식 밀집 사육축산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AI 유입과 확산 원인을 철새에게 전가하는 것은 AI 확산을 자연재해성으로 인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정부와 사회가 AI 근본 원인에 대한 책임과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 우려된다. 동물 전염병 발생 시마다 철새를 탓하는 정부의 변명을 국민들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문제는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집약식 축산 환경 때문이다.
알을 낳는 닭은 A4용지 반장만한 면적의 공간에서 평생 알만 낳다 죽는다. 날개를 펴지도, 땅도 밟지 못하고 닭 고유의 습성인 모래목욕 한번 하지 못한다. 이렇게 동물이 가진 본성을 억압하는 열악한 환경은 극도의 스트레스로 동물의 질병 저항력을 약화시킨다. 밀집 사육은 수많은 개체에게 바이러스를 급속도로 확산시키고 바이러스 변이도 촉진한다. 연구결과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공장식 농장에 유입되면 몇 시간 내에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항상 변이했으며, 실제로 공장식 축산 농장에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유입되어 고병원성 바이러스로 발전한 경우는 이탈리아(1999), 칠레(2002), 네덜란드(2003), 영국령 콜롬비아, 캐나다(2004) 등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난 분변과 먼지, 톱밥이 쌓이는 비위생적인 공장식 축산 환경은 바이러스가 침범하는 순간부터 빠른 바이러스 진화를 위한 매우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국 환경식품농무부(DEFRA)는 바이러스가 1번째 감염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전파될수록 독성이 증가해 3, 4배 수치로 폐사율이 증가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태어난 지 33일 정도에 도축되는 육계는 빠르게 성장해 더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품종개량이 되면서 질병에 대한 면역이 감소되었으며, 유전자를 단일화하므로 개체 간의 질병 전파를 더욱 급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동물복지 축산 제도를 확립하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가 발표한 2003년부터 2014년 1월 13일까지 고병원성 AI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베트남, 태국, 방글라데시,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네팔, 터키 등에 이어 세계에서 11번째로 발생건수가 높은 국가로 이는 후진국형 축산정책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동물 전염병 발생과 확산의 근본원인인 공장식 축산에 대한 반성과 함께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동물뿐 아니라 농가와 국민들이 겪는 악몽이 계속될 것이다. 되풀이되는 실수를 막으려면 생산성과 경제성에만 치중하고, 축산업 확대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낭비하는 현 축산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와 함께 동물의 본성을 존중하는 동물복지 축산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농림부가 주장하는 ‘AI의 철새 발생론’은 비과학적이다.
농림부는 지난 28일, 농림축산검역본부 AI 역학조사위원회가 ‘이번 국내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의 원인을 야생조류(철새)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① H5N8형 AI의 국내 발생 기록 부재 ② AI 발생농가 인근에 겨울철새 월동 ③ 철새 폐사체에서 H5N8형 바이러스 검출을 증거라고 했다. 또한 위원회에는 수의과대학 및 의과대학 교수, 환경부(국립환경과학원, 국립생물자원관) 및 민간연구소의 야생조류 전문가, 생산자 단체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면서 권위 있는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① H5N8형 AI가 야생조류에서 발생한 사례가 없고, ② 철새와 가금류의 접촉 경로를 확인하지 못했으며, ③ AI 발생이 철새(18일)보다 가금류(16일)에서 먼저 발생했고, ④ 철새들 AI 발생보다 두 달 전부터 와 있었고 철새의 도래가 이번 겨울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 등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없다. 또한 위원회에서도 농림부가 밀어붙이는 철새 발생론의 비논리와 비과학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많았다.
농림부는 비위생적으로 밀식 사육되는 가금류의 실태, 출처 불명의 외국산 사료의 영향, 종란이나 종오리의 수입 여부 등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처음부터 철새들에게 모든 책임(발생, 확산)을 떠넘겨 왔다. 원인과 경로를 밝히지 않은 농림부의 철새 탓은 결국 철새들의 생리와 영향을 신비화하고 악마화해서, 철새에 대한 혐오와 추방을 대책이라며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2월 3일 현재까지, 닭오리 사육 농가 중 AI 양성으로 밝혀진 13건 중 철새로부터 감염된 경로를 밝힌 사례는 단 하나도 없다. 결국 AI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에는 철새를 탓하며 다른 전염 경로에 대한 조사와 대응에 소홀함을 보인 농림축산식품부의 무능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높다.
철새 먹이나누기 중단과 항공방재는 철새의 생태에 무지한 전시행정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철새들이 AI를 옮겨왔다는 초동 발표를 한 것은 1월 20일이고, 환경부는 다음 날 철새 먹이주기 행사를 중단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최근 일반화된 볏짚의 싹쓸이 수거시스템(곤포 사일리지)에 덧붙여, 지자체들이 시행하던 철새 먹이 공급 자체를 막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철새들을 제한된 지역에 과밀 집중시키고, 먹이를 찾지 못한 철새들을 연쇄적으로 농가 주변까지 진출시키는 등 혼란만 부추겼다. 철새들을 더욱 허약하게 만들어 자연상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위험까지 야기했다는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그나마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환경부가 ‘철새 먹이주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한적인 범위에서 안전하게 먹이나누기를 가능케 한 것은 다행이다. 이는 철새들의 먹이를 안정시켜, 불필요한 이동에 따른 위험의 가중과 철새들이 에너지 낭비를 방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항공방재는 광범위한 국토를 살균하겠다는 발상 자체부터 무모하고 비현실적이다. 농림부는 항공방재의 효과를 검증하거나 부작용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항공방재를 실시하고 있다.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서나 전문가들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방재제로 사용되는 약품들의 성분이나 효과를 공개하지도 않고 있다. 하지만 효과를 알수 없는 항공방재가 낮 시간 동안 물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철새들을 간섭해 스트레스를 주고, 활동량을 늘려 체력과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철새 괴롭히기’인 것은 분명하다. 곳곳에서 철새들을 쫓아 내 연쇄적인 이동을 초래하고 있으며, AI 바이러스 외에도 다른 생물들을 치사시켜 생태계의 교란을 불러 오고 있다.
야생조류에 죄를 물을 수 없다. 그들과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1994년 생물다양성 협약에 가입하였고, 이에 따른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2009년 이후 철새들의 먹이를 남겨 두는 생물다양성관리계약제도 등 생물다양성 사업 관련 예산을 줄여 왔다. 지난 2010년 AI 발생에 따라 논란이 됐음에도, 철새 모니터링과 철새의 보호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라도 철새를 인간과 함께 공존해야할 존재로 인식하고, 생물다양성 사업 확대 등을 통해 철새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낙곡률을 높여 들판에서 철새들의 먹이를 확보하고, 축사 허가 시 철새 도래지와 거리를 확보하는 등의 방법은 철새와의 관계가 불편해지지 않는 방법이다. 올 해는 강원도 평창에서 12차 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가 예정되어 있다. 세계를 상대로 말로만 생물다양성 보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AI 사태에 현명하게 대응하고 철새과 더불어 살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갈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농림부의 2014년 AI 대응메뉴얼은 재앙이다.
농림부는 고창에서 AI가 발생한 초기에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등 초동 방역에 실패했다. 도리어 ‘동림저수지에서 1000마리 철새가 떼죽음 당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리는 등의 방법으로 혼란을 불러 왔다. 또한 농림부가 쏟아 내는 많은 정보들은 교차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각종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주장의 신뢰성을 검증하기도 어렵다. 방재제의 성분과 영향에 대해서조차 공개하지 않는 농림부의 밀실 행정은 대책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을 넘어, 새로운 불신과 불안을 유발하는 원인이다. 자신들의 예방 실패와 대책 부실 책임을 떠넘기기에 안달하는 농림부를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부재가 오늘 새로운 불신과 불안의 이유인 것이다.
또한 280만마리의 가금률를 살처분 매몰처리하기 위해 동원한 7400명의 인력에 대한 사후 조치도 걱정이다. 심리적으로 겪게 될 심각한 후유증에 대한 대책 마련 없이 공무원과 군인 등을 손 쉽게 동원한 것은 이후에 두고두고 짐이 될 수 있다. 또한 방역과 소독에 동원한 63,000명 역시 노출된 약품의 영향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받거나 적절하게 조처를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늦었더라도 약품에 대한 노출이나 이용 과정에서의 피해에 대해 고지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농림부의 ‘AI 대응’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 행정의 전형이었다. 원인을 철새에 뒤집어 씌워, 책임의 규명이나 배상액의 할당 등 복잡한 절차 없이 국가예산으로 손쉽게 주민들에게 보상하고 끝내려는 행정편의주의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 접근은 불법적일 뿐더러,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생명을 키우고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는 부서의 태도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부도덕하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한다.
우리가 키우는 가금류들을 양심의 가책 없이 손쉽게 학살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다. 한국을 찾아온 철새들을 병들게 하고 학살하는 과정은 양심을 버리는 행위다. 부처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국민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하며,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고치기 위해 개혁에 나서야 한다. 첫째는 공장식 축산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하고, 다음으로 철새와 공존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행정부서의 개혁이다. 답은 간단하다. 동물 복지와 국민의 건강은 연결되어 있으며, 정부는 자신들의 역할을 진실되게 수행해야 한다. 국민들은 오늘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되고, 사회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한다.
이번 전북 고창에서 초기 발생한 AI에 대한 농림축산식품부의 방역 대응은 각 지자체에 적절한게 전달되지 못한 듯하다. 상식적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철새들에 대한 방역이 효과적인 것인지 의문이다. 광범위한 철새도래지에 대한 통제도 쉽지 않을뿐더러 인체 및 철새들과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도 모르는 항공방재로 철새들의 피로는 가중되고 축산농가는 예방차원의 대량 살처분으로 힘들어 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고속도로 및 국도의 주요 교차점에 대한 방역 시스템 현장 조사 결과 들고나는 쌍방향 모든 차량에 대한 전방위적 방역이 아닌 일방향, 선택적 차량 소독으로 인한 방역 시스템의 허술함이 드러났다. 농림식품부와 환경부, 지자체의 관리 구조 다원화로 AI 발생에 대한 즉각적이고 체계적인 방역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관리부처의 개선이 필요하다.
2014년 2월 6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동물자유연대, 한국물새네트워크,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