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길고양이와의 동행] 고양이 이야기 10편 - 길냥이와 만나는 골목길

길고양이

[길고양이와의 동행] 고양이 이야기 10편 - 길냥이와 만나는 골목길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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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8.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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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이었다. 해가 뜨거웠고 가는 곳마다 열기에 지친 사람들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가는 나 역시 그랬다. 특히나 집은 가파른 경사길을 따라 언덕 하나를 올라가야 하는 달동네였다. 깎아지른듯한 비탈길에도 차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는 모습은 볼 때마다 아슬아슬했다. 이 길을 오르는 일은 등산하는 것과 비슷했다. 언덕 끝에 다다르면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길 모퉁이에 자리 잡은 구멍가게가 나타나면 비로소 평지였다. 그리고 구멍가게 건너편에 있는 낮은 담벼락 아래로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나와 앉아있는 날이 많았다. 집안의 무더위를 피해 바람이라도 쐴 겸 나와 있는 어르신들이었다. 그날도 할머니 몇 분이 커다란 부채를 하나씩 손에 들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어서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들 옆에 있는 작은 상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튼튼한 종이상자 하나를 거꾸로 뒤엎어 놓고 그 위를 상자만한 벽돌로 눌러둔 모습이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냥 지나치고 싶었다. 너무 더운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힘없이 우는 소리는 박스 안에서 새어나온 소리였다. 그 소리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혹시, 박스 안에 새끼고양이가 들어 있나요?
박스 바로 옆에 있던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둑 괭이가 하도 설쳐놔서 한 마리 잡았지.
-이것들이 어찌나 설치는지 이 동네 쓰레기봉투를 다 뜯고 다녀.
-그러니까 여기 벌레 꼬이지, 냄새 나지, 얼마나 더러운지 원.
할머니들은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래도 새끼인데 놔주시면 안될까요?
그때부터 할머니들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걸 풀어주면 또 쓰레기를 다 풀어제낄텐데 그걸 누가 치우라고 그러는겨?
-이놈들이 저지르고 다닌거 결국 우리가 치운다 아니여. 
-일부러 이렇게 잡아 놓은 거여. 죽으라고.
마지막 할머니의 말에서 살기까지 느껴졌다. 그 서늘함에 이마 위로 흐르던 땀이 얼어붙는 듯 했다. 퇴근길에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언덕을 올라오다가 우리들의 싸움을 구경하면서 지나갔다. 아니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동네 터줏대감 할머니들의 일방적인 분노였다. 나는 길 한가운데 서서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발길을 뗄 수 없었다. 
동네에 고양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가구주택과 빌라가 따닥따닥 붙어있는 좁다란 골목길 사이로 쉽게 고양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주로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봉투를 뒤져 음식물 찌꺼기를 먹는 듯했다. 쓰레기를 배출하는 날에 집으로 들어갈 때면 골목 어귀마다 쌓여있는 쓰레기봉투 중에 뜯어져 있는 것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쓰레기가 어떻게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 삶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어떤 동물이라도.



나는 결국 자리를 피하는 쪽을 택했다. 그 자리에서 싸운다 해서 할머니들의 분노를 잠재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분노를 더 키웠다가 그들이 길냥이들을 상대로 다른 해코지라도 더 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이제 곧 해가 질 테니 그분들도 분명 저녁을 먹으려 집으로 들어갈 거였다. 그때 다시 집에서 나와 박스 안에 있는 고양이를 구출해주려고 마음먹었다. 좀 늦었지만 나는 집에 들어가 씻고 저녁도 차려 먹었다. 다시 나올 때는 해가 지고 어둑어둑한 밤이 돼 있었다. 구멍가게가 있는 골목에 들어서자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그런데 아까 상자가 있던 자리에도 아무것이 없었다. 주변 다른 골목들도 다 찾아봤지만 그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 허탈해졌다. 아까 그 자리에서 바로 구해줬어야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어쩌면 나처럼 그 고양이를 구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이가 나보다 한발 앞서 풀어줬을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누군가 골목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환한 가로등 아래 돗자리를 깔고 부채를 부치며 맥주와 안주를 늘어놓았다. 열대야 현상으로 이젠 밤에도 골목길에 나오는 이들이 잦아졌다. 그들에게도 길냥이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공유하는 골목을 더럽히는 존재로밖에 비춰지지 않을까? 길냥이들도 쓰레기가 아닌 다른 먹을거리가 있다면 굳이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개체수가 늘어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오늘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때엔 누구나 골목길에서 반갑게 길냥이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더위를 이겨낼 바람을 함께 나눌 동무가 생겼다고 서로 반가워하면서.



댓글


홍소영 2013-08-29 12:01 | 삭제

비록 내가, 혹은 내 주변이 가난하더라도 마음만은 가난해지지 않기를..
아주 먼 옛날을 거슬러 이집트에서 처음 발견된 고양이, 필요에 의해 데려왔으면서 이제는 천덕꾸러기 취급에 생명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도 어느 골목 안 터벅터벅 힘없이 걸어가는 이 땅의 고양이가.. 너무 아픕니다.


홍현신 2013-08-29 18:45 | 삭제

정말 아픕니다. 어제도 만났고, 잠깐의 여유가 허락되어 사치스러운 커피 한잔을 하던 오늘 아침에도 아프게 만났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건 고작 편의점에 뛰어들어 사다준 천하장사.ㅠ


정진아 2013-09-02 11:00 | 삭제

사람들은 길고양이가 생활에 불편을 준다고 싫어하지만, 사실 길고양이 입장에서 보자면 사람들은 불편을 넘어서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존재가 아닐까요. 이 세상을 인간만이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사라져야 길고양이를 비롯한 모든 생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해질 수있을텐데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경숙 2013-09-04 16:57 | 삭제

안타깝네요...ㅠㅠ
그때 집에서 키우겠다 하면서 데리고 갔더라면...
(키우실 사정이 안되면 다시 방사를 하더라도)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ㅠㅠ
이 나라에서의 길냥이들과의 공생...정말 힘들고 안타깝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