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길고양이와의 동행] 고양이 이야기 5편 - 삼순이의 고향

  • 동물자유연대
  • /
  • 2013.07.23 17:33
  • /
  • 4970
  • /
  • 382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골목길은 어디를 가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때문에 굳이 애쓰지 않아도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술술 골목길 풍경을 그려낼 수 있다. 도미노처럼 빼곡하게 줄을 선 주택 건물은 쌍둥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사이를 쌩쌩 달리는 자동차는 항상 바쁜 발걸음의 사람들과 뒤섞여 움직인다. 잿빛의 딱딱한 아스팔트는 며칠만 비가 안와도 가물은 땅처럼 건조해지고. 생활 쓰레기를 내 놓는 주 3일 중 하루가 되면 전봇대나 담벼락엔 크고 작은 종량제 봉투가 몇 개씩 쌓인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길고양이들이 드디어 익숙한 도시풍경을 완성시킨다. 길고양이는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의 한 조각이 되었다.



우리 집 반려묘 “삼순이”도 새끼 때 길에서 구조된 도시의 길고양이이다. 같은 곳에서 구조된 노란색 태비 아기 고양이(이하 ‘아깽이’) 5마리 사이에서 단연 튈 수밖에 없는 얼룩덜룩한 묘한 털의 카오스냥이였다. 아깽이 임시보호 소식에 그렇잖아도 동물병원을 제 집인 냥 드나들던 동생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곳 문턱을 넘었고,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카오스냥이를 가슴에 품고 집으로 처 들어 왔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어머니 때문에 그날 저녁 우리 집은 전에 없던 냉전 상황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동생은 한사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우리의 가족이 된 삼순이는 예쁘기보다는 어딘지 좀 희한한 생김새의 아깽이였다. 나중에서야 동생은, 노란색 예쁜 털을 가진 태비 아깽이들은 갈 때마다 가족을 만나 떠나느라 한 마리 두 마리 수가 줄어드는데도, 한 구석의 희한한 털을 가진 아깽이는 아무도 탐을 내지 않길래 덜컥 품에 안고 와버렸다고 고백했다. “데려오려면 좀 잘생긴 놈으로 데려오던가.” 낯선 환경에 바들바들 떠는 삼순이를 정면으로 본 어머니의 첫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삼순이가 우리 집에 온지 어느덧 만 3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삼순이는 아직까지 현관문 밖 발소리에 겁을 집어 먹고 장롱 위로 숨어든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전히 성인 남자의 목소리를 무서워 해 아버지 재채기 소리에도 꼬리가 배 밑으로 말려 들어간다. 가끔 들리는 자동차 경적소리에는 돌처럼 굳어 온몸의 털이 바짝 서고, 이동가방에 넣어 병원에라도 다녀 온 날이면 장롱 위에 올라가 한참을 내려오지 않는다. 애가 타게 이름을 부르며 어르고 달래도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있을 뿐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처음 집에 온 직후에는 어찌나 식탐이 강한지 헛구역질을 할 만큼 사료를 먹고 또 먹었었다. 우리 집 막내 삼순이의 고향이 도시의 골목이라는 걸 어쩔 수 없이 실감하는 순간들이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삼순이는 종종 창틀에 앉아 골목어귀를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럼 나는 괜히 가슴 한 구석이 묵직해져 조용히 다가가 삼순이를 꼭 안아 준다.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삼순이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 슬퍼지기 때문이다. 물론 구조되기 전 아깽이 삼순이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는 추측밖에 할 수 없지만, 동물병원 의사선생님 말로는 겁이 많고 예민한 삼순이의 성향이 아마도 그 시절 기억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 하셨다. 도시의 고양이로 사는 것은 온통 낯설고 모든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면서.


다시 한 번 도시의 골목을 떠올려 본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이 고양이들에겐 얼마나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을까. 가뜩이나 늘 목이 마른 놈들인데, 딱딱하고 건조한 도시의 아스팔트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악취가 나는 쓰레기봉투를 뒤적이는 녀석들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해보기는 했을까. 생존의 문턱에서 내는 절박한 울음소리에도 돌아오는 거라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해코지뿐이었을 텐데 어떻게 참아 낸 것일까. 이 도시에서 고양이로 태어난 죄가 이런 모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중죄인 것일까.
골목에서 자동차를 몰지 말고, 까치발로 걸어 다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스팔트를 드러내고 물웅덩이가 있는 흙 밭을 만들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 도시풍경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은 길 위의 생명들에게도 도시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우리 동네 골목에서 살고 있는 삼순이를 꼭 닮은 길냥이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모습이다. 


삼순이를 막내로 들이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부쩍 골목의 길고양이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셨다. 길냥이 생김새의 기준은 언제나 삼순이이다. “크기가 꼭 우리 삼순이 처음 왔을 때 만해.” “우리 삼순이처럼 털 색깔이 3개가 섞였더라고.” “우리 삼순이는 통통하니 살이 쪘는데, 그 녀석은 삐쩍 말랐더라...” “가만히 쳐다보니까 지 먹을 거라도 줄줄 아는지 입맛을 다시는 거야. 우리 삼순이 배고플 때 그러잖니.” 그리고 이 계절이면 늘상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도 자연스레 나를 불러 “배고파서 저러나 보다. 얼른 사료랑 물 좀 내다 줘라.” 하시면서 삼순이 사료를 덜어 챙겨 주신다. 그럼 나는 어머니가 챙겨준 사료와 물을 내다주며 정말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만다. ‘동생이 삼순이를 데려와줘서 참 다행이다. 우리 삼순이가 이 도시의 길고양이로 남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라고.





댓글


김수정 2013-07-24 16:25 | 삭제

이기적인 생각이라뇨..저도 그러는데..제가 키우고 있는 강아지 아서도 유기견이었죠..우리집에 막내로 들어온지 4년째..얼마나 이쁘고 이쁜지.저도 그런 생각한답니다..그전에 주인은 누구였을까? 어떻게 지냈을까..버려졌을때 얼마나 슬펐을까..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온답니다..삼순이랑 영원히 행복하시길..^^


정진아 2013-07-26 10:28 | 삭제

저 역시 한때는 길고양이였던 우리집 고양이들을 볼때마다 나에게 오게 되어 참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길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험난한 삶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이동은님 글처럼 길고양이 또한 여러 도시 풍경들 중 하나로 인정받는 날이 언젠가는 오겠죠? 조금 더 빨리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 주세요.


이경숙 2013-07-26 13:56 | 삭제

길냥이들의 서글픈 삶...제가 밥을 챙겨주면서 늘 느끼는 겁니다
삼순이와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김현정 2013-07-26 14:23 | 삭제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오늘도 또 한번 반성합니다.
저 또한 길고양이들에게 마음만이 아닌 행동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