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은 서울정도의 크기의 정말 작은 나라지요. 그래서 좋은 나라가 쉽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은 만큼 관리도 쉬울 수 있으니까요. “좋은 나라”라는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싱가폴에 2년 동안 사는 동안 ‘싱가폴이 정말 좋은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한 것은 어느 동네를 가나 여기 저기 늘어져 자고 있는 길고양이들의 삶을 배우고 나서였습니다. 그곳에 길고양이들은 동네 사람들이 매일 깨끗한 물과 밥을 제공해 줘서 정말 포동포동 하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치 ‘안녕하세요’ 하듯이 야옹 거리지요. 길을 멈추고 쓰다듬어 주면 같이 좋아서 바닥에 냉큼 누워서 구르거나, 머리를 몸에 비비면서 반기지요. 사람들의 이런 고양이에 대한 편견없는 인식은 길고양이들을 동네에 천덕꾸러기가 아닌 여느 새처럼, 나무처럼 우리 삶 속의 공생의 대상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제서야 창문에 망을 달고 소 잃고 외양간을 고쳤지요. 길냥이가 다리만 낳으면 다시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희망을 가져 보는 중에 길냥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습니다. 결국에 길냥이는 일주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떨어지면서의 충격이 폐에 조그마한 구멍을 만들면서 길냥이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목이 죄가는 상황이 된거였습니다. 당시에는 의사도 그것을 보지 못했고, 죽고 나서야 사인 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길냥이가 그렇게 가고 나서 두 달 동안 깊은 우울증에 빠져 사는 게 지옥 같았습니다. 죄책감에 미안한 마음에 매일 울기만 했습니다. 지금의 제 남편, 그 당시엔 남자친구가 다른 고양이를 보호소에서 입양하길 권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길냥이 대신 다른 고양이들을 살려 보자구요. 왜냐면 당시 저희가 간 보호소는 킬링 쉘터(killing shelter) 였거든요. 그렇게 해서 올리와 달리를 입양하게 되었지요.
싱가폴 고양이들은 대체로 발길질 대신 보살핌을 받아서 그런지 대부분 정말 붙임성도 좋고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올리와 달리는 쉘터에서도 이웃사촌이어서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에 와서는 적응시간이 많이 필요 없었지요. 집에 온 첫날은 케이지에서 풀려난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몇 시간이 지다도록 둘이서 뛰어다니며 놀았답니다. 사실 당시 저희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법적으로 한 마리의 반려동물만 허락이 되는데, 저의 고집으로 둘 다 데려올 수 있었지요. 고집이 그런 식으로 통하기도 하더군요.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저는 내심 남자친구가 고양이를 놓고 가자고 할 까봐 걱정을 했습니다. 그 전까지 제 인생에 사람들은 다 그랬었거든요. 하지만, 반대로 당연히 고양이들도 함께 이사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남자구나. 꽉 잡아야겠다’ 라는 확신을 했답니다.
올리와 달리가 서울에 함께 와서는 비행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기까지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진짜 친구가 되려면 여행을 함께 하라는 말처럼, 반려동물과의 여행도 역시 특별한 경험입니다. 정말 끈끈한 강력 본드지요.
서울에 1년을 머무는 사이 언니가 입양한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가족들 사이에서 ‘고양이 전문가’라고 불리던 제가 산파를 했지요. 세 마리의 건강한 새끼를 낳은 후, 어미 고양이는 안도의 긴 한숨을 쉬고는 저를 한번 쳐다보는 눈이 ‘고마워요’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새끼 낳는 내내 어두운 방 구석에 함께 있었거든요. 세 마리의 아기 고양이들을 위해 입양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두 마리의 여자 고양이들은 조용하고 사람을 좋아해서 입양이 정말 쉬었지요. 하지만 첫째이자 남자 고양이인 배트맨은 정말 유난스러웠습니다. 야옹하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고, 밥을 먹을 때는 항상 밥통을 뒤엎으며 수선을 떨고, 낯선 사람이 오면 소파 밑에 숨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답니다. 당연히 아무도 배트맨을 좋아하지 않아서 운명적으로 제가 입양을 할 수 밖에 없었지요.
벌써 5살인데 우리 남편은 근래 들어서야 배트맨을 좋아하기 시작했습니다. 세 마리의 고양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오는 게 말 그대로 장난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은 다들 저더러 미쳤다고 했지요. 처음엔 ‘고양이들 다 버리고 가라’ 하다가 안되니까 ‘배트맨이라도 버리고 가라’ 하면서 떠나는 날까지도 만류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세대의 차이도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반려동물을 가족이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보는 사고의 차이는 현실적으로 각자의 삶에 현저한 차이를 만든다고 봅니다. 저희 부모님에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지요. ‘이 아이들은 고양이가 아니고 나의 딸이고 아들이다. 어떻게 자식을 버리고 가란 말이냐’ 그 당시엔 그 분들은 이해 하지 못하셨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전화를 통해서 안부를 물으실 때는 ‘아이들은 잘 있니?’ 라고 하신답니다. 그러면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나곤 하지요. 우리가 하는 행동이 우리의 삶이 되고, 우리의 행동은 인식과 생각에서 옵니다. 인식과 사고는 바꿀 수 있지요. 다만 시간과 인내심이 많이 필요할 테고 그 사이에 많은 생명들이 고통과 죽음을 맞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포기를 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기나긴 비행의 시간을 잘 버텨준 우리 아이들이 고맙고 자랑스럽기만 했습니다. 미국 생활에 잘 적응을 하고, 1년 정도 지나서 비 오는 어느 여름날, 쉴 새 없이 야옹거리는 새끼 고양이의 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이어졌습니다. 이리저리 살펴 보고 다닌 끝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벌벌 떨면서 풀숲에서 저를 올려다 보는 검은 눈이 보이더군요. 한 주먹도 안 되는 정말 작은 고양이었습니다. 아마추어에게 두려움에 떠는 작은 고양이를 구출 하는 데는 빗속에서 몇 시간의 역경이 동반되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이웃들의 도움으로 구조에 성공해서 집으로 데려와, 며칠을 함께 보내면서 어른 고양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아기 고양이도 자연스럽게 우리 가족이 되었지요. 진저는 저희가 집에서 진저비어(ginger bear)를 만들어서 생강 냄새가 온 집에 진동하던 날 왔지요. 어쩌다 그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저가 우리 가족이 될 운명이었다는 건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은 사람 둘 고양이 넷, 서로가 있어서 행복한 가족이랍니다.
김시정 2013-08-14 20:34 | 삭제
저도 싱가폴에 살구 있어요. 여기 고양이들은 사람 별로 안피하구 친근한 애들이 대부분인 거 같더라구요. 날씨도 따뜻해서 길바닥에 철퍽 누워있는 애들도 자주 보이구 :) 글로벌 고양이 가족들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최지혜 2013-08-16 01:46 | 삭제
각 국을 돌아다닐때 마다 가족이 늘어가네요..
정말 대단한 동물사랑에 존경을 표합니다.
동물의 입양이나, 생활환경에 있어, 저의 현실수준을 먼저
머리속에 떠올려보는 제가 부끄럽네요,!
이경숙 2013-08-21 16:46 | 삭제
정말....훈훈한 감동드라마네요
아가들과 착한 신랑과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정진아 2013-08-23 14:45 | 삭제
싱가폴 길고양이 이야기를 들으니 참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길가에 항상 깨끗한 물과 밥이 있고, 길냥이들은 사람들을 겁내지 않는 날이 오겠죠. 문지영님 좋은 글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남편 분, 고양이들이랑 행복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