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길고양이와의 동행] 고양이 이야기 2편 - '공주'를 추억하며

길고양이

[길고양이와의 동행] 고양이 이야기 2편 - '공주'를 추억하며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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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07.0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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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문공원 근처 안산 자락에 위치한 아파트 한 귀퉁이에서 그 아이는 살았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사라졌다.


어느 날 밤, 앞날에 대한 걱정과 번민으로 잠을 못 이루고 아파트 마당을 서성일 때, 가로등 아래 어둠속에서 내 손바닥의 채 반도 되지 않는 작은 몸으로 쓰레기통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근처를 뒤지는 녀석을 발견했다. 뭐든 먹으려고 애쓰는 녀석의 몸은 놀랍게도 불구였다. 오른쪽 다리는 엉덩이 아래 부분부터 아예 없고 꼬리도 바짝 잘려져서 없고 세 다리로 절뚝절뚝 움직이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서 눈물이 절로 났다. 그렇게 녀석과의 인연은 시작됐다. 그 작은 녀석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다른 어미 고양이를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저희들끼리 뒤섞여 노는 모양을 바라보며 멀찍이서 뒤쫓아다니던 슬픈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뭘 먹여야 하는지 전혀 모르던 나는 우선 참치 캔을 따서 녀석을 찾아 다녔고 거리를 두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낯을 익혔다. 고양이 사료를 산다는 생각은 못하고 밥에다 생선을 비벼서 주거나 무엇이든 먹여 보려고 애썼다. 어쩌다가 저렇게 많이 다치고 혼자가 되었는지, 또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쩌면 저렇게 치열하게 견디며 살아 내는지 나는 그저 감탄스러울 뿐이었다. 씩씩하고 용기 있는 모습에 나는 매일 매일 감동을 받고 또한 위로를 받았었다. 그때부터 너무 이쁜 암놈인 녀석에게 공주라 이름 붙이고 저녁마다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공주는 비슷한 시간에 늘 나를 기다렸다.
공주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라긴 했으나 다른 녀석들 보다는 몸집이 작은 편이었다. 높은 곳에 뛰어오르거나 할 때는 제약을 많이 받는 것 같아 보였으나 얼굴은 매우 예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를 낳아서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미에게서 일찍 떨어져서  배운 것도 없을 텐데 어떻게 새끼를 출산하고 기르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 후 여러 번 출산을 했으나 새끼는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거의 죽었고 새끼가 죽은 날은 밥을 먹지 않았다. 공주는 내 곁에서 6년 정도 살았으나 한 번도 곁을 주지 않아 만져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새끼가 죽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몸이 불편한 날은 가만히 서있는 내 다리에 살며시 몸을 비비며 지나갔다. 안타깝고 반가운 마음에 만지려고 하면 어느새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저만치서 나를 아는 체하고 기다리던 녀석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당시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가 되어 직업도 돈도 없고 능력도 없이 앞날이 깜깜할 뿐이었다. 공주는 그런 나에게 용기를 주려고 나타난 듯 했다. 공주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새끼를 낳았고 불구의 불편한 몸으로 새끼를 기르느라 매우 고생했다. 동물의 세계는 냉혹해서 수놈은 수태만 시킬 뿐이지 새끼를 양육하는 것은 오로지 암놈의 몫이었다. 공주는 번번이 새끼들을 낳고 기르다가 거의 죽고 하는 걸 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 겨울에는 물을 주면 금방 얼어 버려서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끓여서 가지고 다니며 밥을 챙기길 여섯 해쯤, 봄이 가까이 느껴질 때 공주는 며칠에 한 번씩 뜸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즈음에 난 공주가 죽을 것을 예감했다. 그때 공주는 나에게 이제 그만 간다는 인사를 충분히 했다. 또한 너무 슬퍼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연의 섭리를 조금씩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으나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 세상에서 어떤 인연으로든 또 다시 만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공주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에는 불멸의 뭔가가 있어서, 너무나 든든하게 수호신 마냥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할 것 같은 믿음이 든다.
내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 임대아파트 좁은 한 켠에서 세상에 나아갈 힘이 하나도 없을 때, 그때 내게로 와서 용기를 준 고양이 공주를 나는 죽을 때까지 기억할 것이며 감사할 것이다. 저녁마다 나를 기다리며 변함없는 믿음을 보여 준 공주를 언제까지고 추억할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런 이유 없이 또한 터무니없이 고양이를 싫어하고 심지어 미워한다. 세상에 던져지듯이 태어난 생명이며 그 생명 주어짐이 선택이 아닌 것은 인간도 또한 같지 아니한가! 고양이를 잠시라도 가까이 지켜 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으리라. 그들이 얼마나 소심하고 조심스러우며 상처를 잘 받고 조용한지. 
현재 우리 인간은 지구에서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힘없는 동물을 배려하고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이 결국엔 인간의 삶도 행복하게 할 것을 많은 이들이 믿는다. 또한 그 숫자는 날로 늘어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댓글


홍현신 2013-07-03 12:15 | 삭제

내동생 공주.. 단지 이름이 같아서 제목을 보고 가슴이 철렁해서 열어볼까말까 망설이다가... 결국은 눈물만 펑펑...감사의 눈물인것 같아요..길냥이의 삶이 2년을 넘기기 힘들다던데 서미진님 덕분에 6년을 버틸수있어서 감사하고.. 장애를 갖고도 씩씩하게 살아 준 공주가 기특하고 고맙고.. 그래서 눈물이 납니다..^^ 사람들 모두가 서미진님같고, 길냥이들 모두가 공주처럼 씩씩하게 살아갈 날을 바래봅니다. 감사합니다~!


김수정 2013-07-03 14:25 | 삭제

맘이 너무 아프네요... 참 장하고 기특하고 이쁘네요.사진도 있었음 좋았을텐데 보고싶네요..하늘나라에서 먼저간 새끼들하고 만나서 영원히 행복하길..


정진아 2013-07-03 16:27 | 삭제

서미선님과 길고양이 공주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용기가 되는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쉽게 지나칠 수 있었던 작은 생명에 눈길을 주고 6년 넘게 돌봐주신 서미선님과 불편한 몸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 공주의 삶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홍소영 2013-07-03 17:54 | 삭제

미선님, 이 이야기는 고양이 이야기인 동시에 미선님 이야기군요..
작고 약한 공주를 만나면서 고단한 삶에 용기를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주는.. 마음이 아프다고 표현하지 않을래요. 종종 동물들한테 경외심을 느낀곤 하는데 공주는 그런 고양이였군요. '둥지에서 떨어져 얼어죽는 새조차도 자신을 동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그저 공주에겐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마음을 울리는 글 전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최지혜 2013-07-04 01:40 | 삭제

제목에서 공주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읽으면서도...
읽는내내 공주가 살아있기를..지금도 잘지내고 있다는 결말이 나기를..
하고 바라는 제 마음은 욕심인걸까요?
길고양이의 슬픈 인생을 알면서도 제발 아니길..이번엔 아니길..
외치고 있네요..


강류경 2013-07-04 13:27 | 삭제

서미선님의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혹시나, 공주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공주도 서미선님의 마음을 다 알고 고맙게 생각하고 떠난것 같네요. 이렇게 따뜻한 글을 보니 참 마음이 뭉클해지네요.


정예지 2013-07-04 17:45 | 삭제

서미선님 글 보면서......나약한 제 자신에 대해 창피하고 참 숙연해지네요...공주는 아픈몸이고 버림받은 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세상을 열심히 살아간 고양이 같아요.........이렇게 감동적인 사연을 알게 되서 너무 기쁩니다. 제 블로그에 스크랩할게요


유경란 2013-07-07 13:03 | 삭제

너무 가슴이 아파요 ...장애를 가진 고양이 공주..어떻게 그리 힘든 몸으로 또 출산하고 새끼를 기르고 햇을까 .... 얼마전 지하 주차장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던 고양이가 생각이 나네요 우유를 몇번 가져다 놓고는 잊어버렸어요 ㅠㅠㅠ


김수연 2013-07-09 13:47 | 삭제

공주와 서로 의지했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찡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