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re] 옛 조상들의 동물에 대한 마음 씀이 궁금한 거...

사랑방

[re] 옛 조상들의 동물에 대한 마음 씀이 궁금한 거...

  •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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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6.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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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서핑하다가 무심코 보게 된 글인데요..

대표님께서 찾으시는 주제와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슷할 것도 같아서 퍼옵니다. 도움이 안되는 자료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서요..

어느 분의 블로그였는데 모르는 분이라서 출처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개고기\'가 우리의 전통문화이고, 음식문화라고 주장하는데 정말 그럴까 싶습니다. 저 글을 보니 우리 조상들은 동물을 생각하는 선한 마음이 있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말이죠..

참고로 \'엽기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부분에서 발췌한 글이라 합니다.  소제목으로 \'전하 어찌 불쌍한 송아지의 우유를 빼앗아 드시옵니까 - 왕의 밥상에만 오른 소젖\' 이더군요..

그리고 맨 밑에 개고기에 관한 시도 퍼옵니다. 시인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첨 듣는 이름이라...이 시는 이현숙 님 블로그에서 허락 안받고 쌔벼왔습니다^^;

 

 

우유, 조선시대엔 왕만 먹었다?

 

우유, 꼬박꼬박 챙겨 드시죠?
온갖 영양소가 듬뿍 담겨 있고, 무엇보다 칼슘이 많아서 성장 발육에 필수죠.
그 때문에 특히 어린이에게는 꼭 챙겨 주는 음식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우유를 왕만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세요?
그게 꼭 귀해서만은 아닙니다. 아주 현실적인 이유가 담겨 있지요.
사실 조선의 풍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의 인식으로는 의외인 장면이 많습니다.
오늘은 그 몇 장면을 모았습니다.

 


#01.우유, 조선시대엔 왕만 먹었다?

 

\"전하! 이건 좀 심하신 거 아닙니까?
우유가 몸에 좋고, 칼슘이나 철분이 많이 들어서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지만,
인력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소젖 그까이거 그냥 대충 짜면 되는 것을 관청까지 만드는 건 너무하죠.
그것도 서너 명 정도면 되지, 200명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세종 3년 병조에서 올린 장계의 내용입니다.


\"어쭈, 그러니까 내가 우유를 먹는 게 아니꼽다 이거야?\"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굳이 우유를 먹고 싶으시면
아침마다 배달해서 드시면 되잖습니까?
굳이 관청까지 둘 필요는 없잖아요.
그게 또 신하들이나 평민들한테까지 혜택이 돌아가면 모르겠지만,
전하나 상왕 전하, 왕족들 몇 명만 먹는 건데,
그걸 위해서 공무원을 200명이나 투입한다는 건 비생산적이지 않습니까?\"
\"이놈아, 유우소 말고 우유를 생산하는 데가 어디 있다고 그래!\"


당시의 소젖은 지금의 우유와는 다른 개념이었습니다.
당시 소젖은 보양식이나 약이었으며, 생우유를 마시는 게 아니라
쌀가루와 우유를 넣어 끓인 뒤 소금으로 간을 한 타락죽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보통 왕의 자릿조반으로 먹었던 것입니다.


\"내가 우유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좀 기분이 나쁘네?
겨우 그런 일로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아니, 저희는 전하께서 우유를 드시는 걸 탓하자는 게 아니라,
너무 비생산적이란 거죠.
우유 몇 잔 받겠다고 공무원이 200명이나 투입된다는 건 전형적인 탁상행정에,
공무원식 자리 늘리기 아닙니까?
이제 공무원도 구조조정을 하고, 체질개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이참에 유우소를 폐지하고, 전하께 우유를 배달하는 건
예빈시(禮賓寺 : 고려, 조선시대에 외국 사절이나 종실, 재신의 음식을 관장하는 관청)에
맡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거죠.\"


결국 세종은 신하들의 주청에 못 이겨 유우소를 폐지합니다.
그럼으로써 우유에 대한 논란이 끝난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기본이념인 유교가 문제를 확대 재생산했던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누군가? 도학정치를 꿈꾸는 선비들이 아닌가?
이런 우리가 어찌 우유를 먹는 행위를 용납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 말이 옳으이. 소에서 우유가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는가?
겨우 송아지 한 마리를 먹일까말까할 텐데,
송아지를 먹일 젖을 빼앗아 사람이 먹다니, 이는 군자가 할 행동이 아닐세!\"
\"맞네, 어찌 불쌍한 송아지들의 먹이를 빼앗아 사람이 먹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보양식으로 쓴다 하지만, 이는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네!\"


이것이 당시 조선의 오피니언 리더라 할 수 있는 유학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젖소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일반 한우에서 하루에 짜낼 수 있는 젖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죠.
그 얼마 안 되는 젖을 송아지가 먹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인간이 빼앗는 것은
유교의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며 유학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시대 내내 우유는 극히 제한적인 \'보양식\'으로만 허용되었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퍼지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왕에게 진상되는 우유는 불문에 그쳤습니다.
나라의 주인인 임금의 건강을 위해선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 보신탕공화국 -  백무산 ] 


그런 일은 없었다, 입맛 당기면

언제고 늘어진 자*를 들먹이며 킬킬대며

먹던 그런 전통은 우리에게 없었다


사람 반길 줄 알고 품에 안겨오는 개를

잡아먹는 일이 어디 속 편했을까

미안하고 죄송해서

마을을 멀리하고 당산도 벗어나고

개울가나 뚝 떨어진 빈집이나 다리 밑에

솥단지 걸고 기껏 삼복에나 한두 번

입 닦고 시침떼고 흔적 다 파묻고

어쩌지 못해 먹는다만 미안하고 죄송해서 어쩌나

집에 들고 가 식구들 둘러앉아 먹는 일 없고

먹을 게 쌓여 썩어가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몰려가

물어뜯는 전통은 없었다


블란서에서 별난 년이 별난 소리 한마디 한다고

내처 어깃장 놓기로 작정을 하고

무슨 불온한 사상의 냄새라도 맡았는지

이제 당당히 먹자고 등심 안심 골라 먹자고

사업화도 하자고 낯익은 궐기대회도 준비하고

티브이에서 신문에서 전통이라고 민족음식이라고


저렇게 킬킬대며 아무 때고 남녀가 몰려가

간접 교미를 해가며 물어뜯는 일은 도시

넥타이족들의 식도락이지 전통이 아니다


한강의 그 잘난 기적과

민족중흥의 보신탕주의를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이즈음에 더 큰 줄로 나는 착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