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강원도, 그 현장을 다시 찾다
지난 4월 4일,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속초까지 확산되며 수많은 피해가 발생됐습니다. 무섭게 번져간 거대한 화마는 강원도의 푸른 산과 나무를 뒤덮고, 마을까지 번져 민가를 급속도로 삼키었습니다. 산불이 순식간에 번지는 상황 속, 동물자유연대는 피해 현장의 주민들과 그곳에 남겨진 동물을 걱정했습니다. 화마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피해 입었을 야생동물들, 그리고 짧은 줄에 묶여 있거나 갇혀 있을 동물들의 피해가 얼마나 컸을까요?
동물자유연대는 강원도 화재 발생 후 인명 피해뿐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심각한 피해가 발생함을 파악하고, 가장 피해가 컸던 고성군청과 토성면사무소 관계자 그리고 지자체 동물보호 담당관과 소통하며 피해상황과 범위를 확인하는 동시에 고통받는 동물들을 최대한 빠르게 구호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4월 6-7일 첫 현장 방문을 시작으로, 동물자유연대는 4월 12일과 4월 16-17일, 4월 23일, 그리고 4월 24일 총 5차에 걸쳐 현장을 방문해 구호활동을 진행했습니다.
산 속에 묶인 채 생활하던 고양이들을 위한 묘사 설치
현장 탐문과 지자체 면담, 응급 치료 조치 및 긴급 견사 설치를 진행했던 1 · 2차 방문에 이어, 4월 16일과 17일에 걸쳐 진행된 3차 방문에서는 보다 정확한 주민들의 요구 파악을 위해 대피소로 지정된 토성면 용촌리, 인흥리 일대 7곳의 마을회관과 천진초등학교를 방문하여 반려동물 가구 수와 현재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이재민들은 대피소 외의 가족이나 지인의 집으로 이동하거나 농사일을 위하여 일터로 나간 경우도 많아 정확한 수치 파악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민들 그리고 동물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1박 2일 간 대피소를 돌고 또 돌았습니다. 총 27가구가 현장 조사에 응해주셨고 동물의 치료와 견사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마을회관을 찾아가고 있는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
현장 조사에 응해주신 이재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대피소를 조사하던 중, 천진초등학교 대피소에서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도와달라는 한 주민을 만났습니다. 주민께서는 "집은 전소되고 키우던 고양이 2마리를 모두 데리고 대피했지만, 아이들을 둘 곳이 도저히 없어 박스를 놓아주고 산에 묶어뒀어요" 라며 대피소에 가족 같은 고양이들을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현실에 낙담하며, 하루 두 번이상 고양이들을 살피러 간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활동가들은 지체할 새 없이 가족들과 함께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한참 차를 타고 올라간 어느 산 중턱, 목줄을 하고 있는 하얗고 작은 고양이 2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산 중턱 나무에 묶여서 생활할 수 밖에 없던 고양이
보호자의 허가 아래 휴지, 봉지를 구조하여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휴지', '봉지'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이 가족과 최대한 가까이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동물자유연대는 대피소 뒷켠에 묘사 설치를 하기 위해 관계자의 협조를 얻었습니다. 서울로 복귀한 후에는 고양이들이 최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을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묘사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수직 공간이 필요한 고양이들을 위하여 높이 1.8m, 넓이 1.2m에 이르는 넓은 묘사를 제작하는 것도, 이를 강원도로 이송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중성화 수술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고양이 '휴지', '봉지'가 가족과 편히 쉴 수 있길 바라며 묘사를 안전하게 이송,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보이며 연신 고마움을 표한 보호자에게 '휴지'와 '봉지'를 무사히 인계할 수 있었습니다.
대피소 뒷켠 열심히 묘사를 설치 중인 모습
묘사 설치 완료 후
새로운 거처를 마음에 들어하길 바라며...
현장에 남은 개들을 위한 견사 지원과 목줄 교체
4차 구호 활동이 진행된 4월 24일, 동물자유연대는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촬영팀과 함께 지난 1 · 2차 지원에 이어 견사와 사료를 준비하여 다시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화상 피해를 입은 동물들은 현장에 동행한 설채현 수의사님의 따스한 손길로 응급 치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현장 조사에서 견사 지원을 요청한 집들을 가가호호 돌며 미리 준비한 견사를 설치함과 동시에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화재로 전소한 집터 한 켠 짧은 목줄에 의지한 채 묶여 있던 개들, 화재 현장은 벗어났지만 머물 곳이 없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묶여 있던 개들... 동물자유연대는 튼튼한 견사를 놓아주고 기존에 짧게 묶인 목줄보다 훨씬 길고 가벼운 목줄로 교체해주었습니다. 또한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남은 개들을 위하여 그릇에 사료와 물도 가득 채워주었습니다. 혹여나 견사와 사료가 필요한데 현장 조사에 응하지 못한 이재민을 위하여, 사료와 견사를 쌓아두고 대피소 내부 방송을 통해 필요한 분들이 가져가셔서 활용하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장에 머무르는 동안, 활동가 모두 주민들과 동물들이 지나간 화마의 흔적을 지우고 하루 빨리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짧은 목줄에 묶인 채 사료와 물을 제대로 공급 받지 못하던 누렁이 (4월 24일, 4차 방문)
화재로 소실된 정자 난간에 묶인 개들 (4월 12일, 2차 방문)
깨끗한 사료와 물, 견사 제공과 함께 편안한 목줄로 교체한 모습 (4월 24일, 4차 방문)
견사를 설치하고 보다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어요 (4월 12일, 2차 방문)
극도의 불안과 우울 상태에 빠진 금비를 구하다
대피소에서 이재민과 면담 시 동물자유연대 활동가들은 안타까운 사연을 접했습니다. 화마가 집을 집어삼킨 다급했던 순간, 한 주민은 견사에 갇혀있던 2마리 반려견들이 제발 무사히 대피할 수 있길 바라며 견사 문을 활짝 열어두었고 그 안에 있던 진도견 '금비'와 '은비'는 가까스로 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화재가 어느 정도 진화된 후, 불타버린 집터와 가재 정리를 위하여 현장을 다시 찾은 보호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망을 갔던 '금비'와 '은비'가 온 몸에 재를 뒤집어 쓴 채 다시 견사 안으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놀라움도 잠시, 보호자는 '금비'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견사 한 귀퉁이에 주저앉아있던 '금비'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넋이 나가있는 듯했습니다. 화재 발생 후 20여 일, '금비'는 식음을 전폐한 채 견사에서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했고 활동가들을 만난 보호자는 지금 이 상황에서 더이상 '금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동물자유연대에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외부인의 방문에도 아무런 미동도 없던 금비
넋이 나간 채 한 곳을 멍하니 응시하던 모습
사실 '금비'는 현재 보호자가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입양한 아이로, 입양 전 학대 피해를 받고 격리 조치, 지자체 보호소로 입소된 아이였습니다.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금비'가 눈 앞으로 매섭게 다가오던 불길 속에서 느꼈을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웠습니다. 현장에서 '금비'의 진료를 봐준 설채현 수의사님께서는 지난 화재로 '금비'의 트라우마가 다시 되살아난 것 같다는 소견과 함께 우선 화재 현장을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고 이후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을 추천해주셨습니다. '금비'는 현재 위탁처로 안전하게 이동하여 보호 중이며, 키트 검사에서 심장사상충이 발견되어 집중 치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총 5차례에 걸쳐 강원도 산불 피해 현장을 방문, 구호 활동을 진행했지만 아직 그곳에는 남아있는 이야기 그리고 남아있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지난 1차 방문 시 심각한 상처를 입고 구조된 '용천이'도 극심한 고통 속에 지금도 힘겨운 화상 치료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용천이 구조 사연▶https://bit.ly/2OV2IG9) 산불 피해를 입은 동물들이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우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주세요. 동물자유연대도 현장에 남겨진 동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