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은 오늘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케이지 프리 선언을 했다. 현재 풀무원은 유통하는 계란 중 20%는 배터리케이지를 사용하지 않은 케이지 프리 계란이다. 이것을 향후 10년 이내에 100% 케이지 프리 계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협약식을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했다.
케이지 프리(Cage-Free)는 달걀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산란계를 철창인 케이지(Cage)에 가두지 않고 키우는 것(Free)을 의미한다. 케이지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시설은 배터리 케이지(Battery Cage)와 배터리 케이지 보다는 시설이 조금 낫지만 감금의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 엔리치드 케이지(Enriched Cage) 등이 있다. 국내 산란계의 95% 이상은 비좁고 고통스러운 배터리 케이지에서 사육되고 있다.
브랜드란 점유율 80% 풀무원, 달걀사업 케이지 프리 선언
풀무원은 국내 브랜드란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 국내 대표적인 식용란 판매 기업이다. 마트에서 브랜드달걀을 구매하려 진열대를 보면 십중팔구는 풀무원 달걀이라는 말이다. 브랜드 달걀을 포함하여 전체 달걀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12%를 넘어선다.
풀무원 창업자인 故 원경선 선생은 생전에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 했다. 풀무원이 그 ‘옳은 것’에 이제 동물복지를 적극 포함하려 나섰다. 바로 달걀사업에서 ‘케이지 프리’를 선언한 것이다. 2018년 8월 22일 식용란 사업을 담당하는 풀무원식품(주) 박남주 대표이사는 2028년까지 풀무원이 판매하는 식용란의 생산과정에서 배터리케이지 및 엔리치드 케이지 등 모든 종류의 케이지를 퇴출하겠다는 케이지 프리 선언문에 서명하는 한편, 케이지 프리 이행을 위한 협력 파트너로서 동물자유연대와 MOU를 맺었다. 풀무원의 달걀시장 점유율을 감안하면 굉장히 파격적이고 파급력 있는 행보다. 기업 풀무원의 이번 선언은 국내 동물복지의 위상을 한 단계 드높이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동물복지를 위한 풀무원의 노력은 지난 2007년까지 거슬러 간다. 당시는 정부의 동물복지 인증기준 조차 마련되기 전이었는데, 풀무원은 자체 동물복지 기준 마련을 위하여 동물자유연대와 협력한 바 있다. 동물자유연대는 정부보다 앞섰던 풀무원의 그간의 노력이 이번 케이지 프리 선언에 이르게 하였노라 평가하고 있다. 현재 풀무원은 육류대체(Meat Alternative)와 동물복지(Animal Welfare)를 7대 사업전략의 주요 내용으로 담고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 케이지 프리 선언 물결
기업의 케이지 프리 선언이 국내는 황무지 수준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보면 드문 것은 아니다. 가장 활발하게 케이지 프리 선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이미 300개가 넘는 기업이 케이지 프리 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산란계가 배터리 케이지 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인데, 기업의 면면도 다양하여 유통업체부터 레스토랑 체인, 커피 전문점, 소비재 생산업체, 달걀 생산업체, 급식업체. 호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기업이 산란계 산업에서 모든 종류의 케이지를 퇴출하는 케이지 프리 선언에 동참했다.
유럽의 경우 EU 차원에서 지난 2012년 배터리 케이지를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케이지가 금지된 것이 아니어서 엔리치드 케이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기에 유럽에서도 기업을 향한 케이지 프리 촉구 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덴마크에서는 불도저로 케이지 농장을 철거해버리는 영상이 이슈가 되기도 하였으며, 프랑스의 경우 기업의 연쇄적인 선언을 넘어 대통령이 케이지 프리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4월 동물자유연대가 참여하고 있는, 산란계 케이지 금지를 위한 글로벌 연대체인 <Open Wing Alliance>의 정상회담이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다. 각 국가별 산란계 현황과 기업들의 케이지 프리 선언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졌는데, 전 세계에서 산란계 복지가 가장 뒤쳐진 건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였다. 아시아 국가에서 기업의 케이지 프리 선언은 모든 국가에서 더뎠는데, 그나마 일본은 케이지 프리 선언 1호 기업이 이미 나타난 상태였다. 대만은 4월 정상회담 당시에는 케이지 프리 선언기업이 없었으나 몇 달 전 1호 기업이 나타났다. 그리고 늦었지만 국내에도 이제 케이지 프리 선언의 물결이 시작된 것이다.
풀무원 선언 그 이후
풀무원 달걀사업의 케이지 프리 선언은 협의 과정이나 향후 이행과정이 교과서적이라 할 수 있다. 대화로 시작해서 공감으로 진행되었으며 다시, 대화를 약속하며 마무리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인 만남만 해도 여러 차례 가졌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앞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풀무원은 케이지 프리 선언 외에 동물자유연대와 MOU를 체결했다. MOU의 주요 내용은 케이지 프리 이행을 위한 상호협력 협의체의 상시 운영, 케이지 프리 이행을 위한 상호협력의 약속, 기타 전반적인 동물복지 향상을 위한 추가 협력 약속 등이다. 이렇게 공통의 목표를 향한 상호협력의 약속 아래 풀무원은 동물자유연대와 자사가 세운 케이지 프리 이행을 위한 로드맵을 공유하고, 이행률 제고를 위해 서로 가용한 자원과 노력을 아낌없이 투입하기로 하였다. 이런 케이지 프리 이행의 방법론적 측면은, 추후 잇따라 케이지 프리에 동참할 기업을 위한 가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물자유연대의 목표는 단순히 기업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며, 기업이 실제로 동물복지를 위한 성과를 만들어 내게끔 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한계도 존재한다. 이번 선언이 풀무원식품 전체 제품에 대한 케이지 프리 선언은 아니며, 풀무원 그룹 전체의 선언도 아니다. 즉, 풀무원식품이 생산하는 소비재 가공식품에 원료로 사용되는 달걀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계획대로라면 국내 판매되는 브랜드란의 80%가 케이지 프리인 동물복지란으로 바뀐다는 점, 케이지 프리 달걀이나 동물복지란 생산이 늘면 그만큼 소비단계의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파생되는 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쉬운 면도 명확하지만, 풀무원식품의 용단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더 많은 기업에 요구한다!
지난 7월 동물자유연대가 진행했던, 한국맥도날드에 케이지 프리 선언을 촉구하는 ‘언해피밀’ 캠페인 기자회견 당시, 한국맥도날드는 동물자유연대에 “어떠한 이야기도 없이 이런 주장을 펼치니 매우 당황스럽다”며 언론을 통해 거짓 선동을 한 적이 있다. 이제 풀무원의 선언이 공개되었으니 동물자유연대 입장을 하나 더 짚고 넘어가려 한다. 동물자유연대는 올 초 케이지 프리 캠페인을 기획하며 풀무원과 한국맥도날드에 비슷한 시기 담당자와 접촉하고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진행 과정이나 결과가 판이하게 달리 나타난 것이다. 한국맥도날드는 불통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루 속히 자기반성을 끝내고, 거의 한 달 째 주지 않고 있는 동물자유연대의 공식적인 질의에 대한 답변을 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케이지 프리 선언에 동참하지 않은 국내 99.99%의 기업에 강력히 요청한다. 하루빨리 동물학대적 요소인 케이지 감금 사육을 중단하고, 이런 생산 환경에서 온 달걀 대신 적어도 케이지 프리 달걀 사용을 약속하라. 그리고 이행과정이 쉽지 않다면 묵묵부답이나 케이지 프리 선언 거부 대신 도움을 청하라. 함께 만들어갈 미래는 동물에 조금이라도 덜 잔인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찌 아직도 잔인한 케이지 사육을 고집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