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선거제도 개혁, 동물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촛불혁명의 정신으로 적폐 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향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건만 낡은 정치의 벽은 부숴지지 않고 있다. 동물보호를 향한 진전도 더디기만 하다. 우리 시대 최대 약자의 위치에서 착취 당하고 있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어렵게 발의된 많은 법들이 국회에서 계류되며 애를 태우고 있다. 과거 수많은 개혁 입법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 계류되고 있는 법들도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좌초되고 마는 것은 아닌지 초조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선거제도의 개혁 없이는 생명존중 사회의 도래가 더욱 어렵다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제도는 소수 정당의 원내 진출이 매우 어려운 구조다. 국회 의석수 300석 가운데 정당 득표율로 결정되는 비례 의석은 고작 47석으로 지역구 253석의 약 1/6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이 높다한들 이것이 비례 의석으로 반영될 여지가 좁다는 뜻이며 일정 득표율을 채우지 못한 정당에 대한 투표는 사실상 사표로서 버려지며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승자 독식인 지역구 선거에서는 거대 정당의 공천 여부와 소위 지역주의가 주요하게 작동하여 정책 선거로 나아가는 데 이미 한계가 내정되어 있다.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비례의석 수 자체의 대폭 확대, 나아가 정당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하는 비례성 강화를 골자로 한다. 기존 선거제 하에서는 의석을 얻지 못했던 소수 정당들이 대거 원내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비례대표제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동물에게도 필요한 제도다. 헌법에 국가의 동물보호 의무와 살아있는 생명의 존엄성 고려 의무를 명시하고 있는 동물보호 선진국, 독일과 스위스는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순수 비례대표제를 택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동물을 위하는 정당의 활동이 활발하다. 2002년 창당된 ‘동물을 위한 당’은 2006년 11월 네덜란드 총선에서 2석을 차지, 원내 진출에 성공했으며 지난 2017년 3월 총선에서도 5석을 획득, 꾸준히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동물당은 끊임없이 새로운 정책의제를 던지고 이를 설득하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다당제 하에서 법안 처리와 예산 심의 등 국회 의사일정 전반에 걸쳐 정당간 협치의 묘를 발휘해 나가며 동물보호가 다른 당과 의회의 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네덜란드는 동물쇼와 트로피 사냥, 모피 목적 동물사육 등을 금지하는 등 소수 정당 정치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아직 동물당은 없지만 계속되는 동물법제 강화 움직임 속에서도 입법 활동은 결실을 맺기 어려웠다. 두 거대 정당은 세 싸움에 매몰되기 일쑤고 국회의원들은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의정 활동보다 지역구 관리에 신경 쓴다. 개혁을 원하는 민의는 늘 지역의 요구에 밀려 타협의 위기에 처하고, 강화된 법안을 내놓아도 지역구의 표심이 번번이 걸림돌이다. 동물학대 도박으로 전락한 소싸움을 폐지해야 하고, 식용 개농장을 척결해야 하지만 지역의 눈치를 살피다 개혁을 미루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한편 국가의 동물보호 정책 수립 의무를 담은 대통령 개헌안은 거대 야당의 당리당략 속에 지난해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한 채 폐기되고 말았다.
국회에 구성된 정치개혁특위는 지난 2년간 공전되어 오다 지난해 어렵사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포함하는 선거제도 개혁에 합의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간에 합의문이 체결, 올해 1월까지 선거제도 개혁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거대 정당들이 말바꾸기를 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올해 3월 선거구 획정을 앞두고 어렵게 만들어낸 선거제도 개혁의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민의보다 당리당략을 좇는 정치권의 구태의연함과 기득권에 치중하는 국회의 행태를 더이상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동물들의 삶이 지금 너무나 참담하여 변화가 시급하다. 국회는 소수자와 약자, 그리고 동물들을 위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서두르라.
2019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