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으로 남은 삶을 걷는다는 것
황순이는 한때 '탈출의 여왕'이라 불리던 개였습니다. 견사 문틈 사이로 기민하게 코를 밀어 넣고, 틈만 나면 펜스를 뜯어 바깥세상으로의 탐험을 시도하곤 했습니다. 10여 년 전 온센터가 행당동 주택 보호소였던 시절에도 황순이는 보호소의 담벽을 넘고, 지붕을 타고 올라 탈출한 전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활동가들은 동네 곳곳을 다니며 황순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황순이는 고집도 대단했습니다. 한 번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고, 싫은 건 끝까지 하지 않았습니다. 예민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자기만의 방식과 기준이 뚜렷했습니다.
그런 황순이가 어느새 열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황순이는 더 이상 탈출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이제 다리가 점점 풀리고, 한 걸음 떼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해졌습니다. 똑바로 걷지 못하고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걸음, 간신히 일어나 몇 발자국 옮기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는 나날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볼일을 본 후 그대로 그 위에 주저앉아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황순이는 하루하루를 아주 천천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렵고, 때로는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그대로 있기도 하지만, 숟가락으로 떠주는 밥은 남김없이 받아먹고, 여전히 산책을 사랑합니다. 예전처럼 쏜살같이 달리거나 경쾌하게 걷지는 못하지만, 산책을 향한 마음 하나로 어떻게든 힘을 내어 발을 떼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라도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는 황순이의 지난 시간을 기억합니다. 자유롭고 고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젊은 날의 황순이도, 더디지만 여전히 세상을 걸어 나아가는 지금의 황순이도 모두 소중합니다. 느린 걸음으로 남은 삶을 걷고 있는 황순이의 늙음의 여정을 함께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