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에게 벌레를 밟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벌레를 위한 것만큼이나 그 아이를 위해서도 소중한 가르침이다
-브래드리 밀러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발바리 한 마리를 얻어 오셨습니다. 그때는 그 개가 왜 그리 무서웠던지 개 옆을 지날 때마다 오금이 저려 오면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한 시간씩 어머니가 돌아오기를 기다려 그때서야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었지요. 심지어 정원의 작은 돌들을 모아 개에게 던지며 개가 놀라 개집으로 들어간 순간 재빠르게 옆을 지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기를 한 달을 했을까요. 애들이 무서워하니 빨리 다른 곳으로 보내라는 어머니의 성화가 있었고 그렇게 그 개는 다른 곳으로 보내졌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은 한 번씩 생각이 날 때마다 지우고 싶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런 말씀도 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애완견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시추나 말티즈 등 실내 소형견도 없었지요. 이러한 견종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집안에서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개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줄어들었으며 이러한 귀여운 동물을 가지고 싶은 소유욕과 비례해 애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애견문화가 정착하기도 전 양적으로만 증가한 애견들은 집 안에서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미성숙한 양육자들에게 내쳐지기 시작했고 유기동물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그맣고 예쁜 애견들이 넘쳐나는 요즘. 우리는 주변에서 동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경우를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개나 한 마리 사줄까?” 흔히들 하는 말이죠. 그중 어린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에서 부모가 동물을 어떻게 대하고 자녀에게 교육을 시킬 것인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녀의 요구와 성화에 못 이겨 ‘일단 사주고 보자’라는 개념으로 무분별하게 동물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기동물의 입양을 원하는 전화를 받아 상담을 하다 보면 의외로 젊은 엄마들의 입양 문의가 많습니다. 대략 짐작해 물어보면 다수가 5살 미만의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으며, 입양의 목적 또한 이제 막 걷고 말하기 시작하는 어린 자녀가 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서 교육 목적으로 입양을 원하는 것이라고 얘기를 하십니다. 그 분들 중 예전에 개를 키워 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부모는 50%가 넘지만 어린 시절 시골의 마당에서 풀어 놓고 키웠던 경험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분들의 경우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유아를 돌보면서 집 안의 개를 함께 돌본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며 아이가 좀 더 자란 후에 다시 고려해 보시라고라 말씀드리면 대부분 수긍을 하십니다.
문제는 동물을 사달라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기 시작하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둔 가정입니다.
동물자유연대는 매년 서울 시내 유치원을 돌며 어린이 동물보호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한번에 50~100명의 유아들을 한자리에 모아 교육을 하는데 매번 처음 시작과 함께 앉아있는 어린 유아에게서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개가 있었어요. 근데 엄마가 다른 집에다 보내버렸어요.” 심지어는 그 어린 유아의 입에서 엄마가 갖다 버렸다는 말까지 나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습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초등학생을 둔 어머니의 울먹이는 전화 한통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간절히 강아지를 원하는 자녀가 반에서 1등을 해 어쩔 수 없이 개를 사주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개를 키우는 것이 처음인 어머니입니다. 현재 8개월째 분양 받은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괜찮지만 아직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가 사람이 없으면 심하게 울부짖어 외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며 개에게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될지 예상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원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이 개를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버리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지만 개를 분양 받은 것을 매일 후회하며 개로 인해 생긴 우울증으로 하루하루가 힘겹다며 마무리를 지으셨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짜증 섞인 목소리로 상담을 요청해 오신 한 아주머니, “푸들인데요. 아우 미치겠어요. 얘 좀 데려 가세요.” 자세한 상황을 물어보니 7개월 전쯤 초등학생인 아들의 성화에 돈을 쥐어주고 개를 사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가 너무 부산스러워 감당하기 힘들고 짜증나며, 더 황당한 것은 아들이 개를 사 올 때는 조그만 미니사이즈의 토이푸들인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것입니다. 몸무게가 4kg을 넘어가고 있다며 당장 밖에 버릴 기세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침 동물자유연대 보호소에 빈자리가 막 생긴 시점이라 다시는 함부로 개를 사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은 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아직도 어린 초등학생 아들의 풀죽은 뒷모습이 생각납니다. 개를 넘겨주고 한시바삐 떠나려는 어머니와 연신 코를 훌쩍이며 계속해서 푸들을 돌아보던 어린 아들. 그 아들의 상처 받은 마음이 저에게는 보이는데 어머니는 짐 하나를 떼어놓은 듯 홀가분해 보였습니다.
산책을 하다 보면 어린 자녀가 개를 데리고 나온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개를 안고 있는 모습은 불편하기 그지없으며 질질 끌고 다니는 모습 또한 많습니다. 심지어는 퀵보드에 줄을 연결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개들이 헐떡이며 끌려가는 안쓰러운 광경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아직 어린 꼬마아이가 늘 혼자 개를 데리고 나오기에 궁금해 물어보니 엄마가 집안에서 배변을 보는 개를 너무 싫어해서 밖에서 싸도록 매일 내보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꼬마아이도 그것이 불만인 듯 빨리 싸라며 개를 다그쳤습니다. 볼일을 다 보게 한 후 황급히 개를 끌고 들어가는 꼬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 개가 그 집에 머물 날이 길지 않음을 직감했습니다.
자녀에게 동물을 사주기로 약속하셨나요?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동물을 돌볼 수 없습니다. 이는 고스란히 부모들의 부담으로 남게 됩니다. 여기에 부담을 느껴 키우던 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버리게 된다면 어린 자녀들의 마음엔 동물을 사주지 않았을 때의 서운함보다 몇 배는 더 심한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내 자녀가 동물로 인해 배려와 사랑을 배우게 하려면 그 전에 먼저 부모들이 동물을 맞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할 것입니다.
▲ 어린 손녀딸이 얻어 온 순진이. 이후 할아버지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 동물자유연대의 어린이 동물보호교육.
▲ 어린 아들의 성화에 구입한 포순이. 덩치가 커지면서 버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