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우리 사회의 새로운 숙제, 반려 동물의 사체 처리

반려동물

우리 사회의 새로운 숙제, 반려 동물의 사체 처리

  • 조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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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04.3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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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공원 나들이를 재촉하는 계절이 왔다. 몇 년 전 부터 애견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더니 이젠 공원 산책길이나 작은 뒷산을 오르내리는 길에서 보호자의 애정 어린 눈길을 받으며 산책길에 동행하는 견공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사회가 되었다. 겨우내 실내에서 답답하게 지내던 견공들도 봄맞이 나들이가 잦을 계절이다.

그런가하면,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출입문 단속이 느슨해져 사랑하는 애견을 잃어버리는 사례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맘때이다. 때문에 동물구조 센터에는 구조 요청 발생 건이 점차 증가하는 시기이기도 한데, 구조될 동물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에 비례할 만큼 길거리에서 객사하는 동물들도 늘어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도로 위에는 동물들 사체가 부쩍 더 눈에 띤다.

비록 동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느끼는 것은 아닐지라도 만신창이가 된 사체를 바라보며 안쓰럽거나 혐오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물권리주의자이든 동물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든 그 관점은 비록 다를지라도 동물의 사체가 길거리에 방치되거나 쓰레기통 속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심정적으로 허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때문이 그에 맞는 적절한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또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는데, 사체 처리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대부분의 대상 동물은 개와 고양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그동안 애완동물이라 불리어지고 있었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애완(愛玩)의 개념에 대한 비판과 함께 반려동물(伴侶動物)로 자리 매김 되어지는 동물들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들의 유희에 의해 적당히 키워지다가 싫증나면 버려도 되는 장난감이 아닌, 인간들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인간의 정서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때론 삶에 지친 영혼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주기도 하고, 육신이 다소 불편한 사람들에겐 그들의 귀와 눈이 되어 주기도 하면서 인간들에게 각별한 만남의 경험을 통해 인류사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온 동물들이다. 이러한 동물들이 이젠 사체 문제가 논란의 대상에 오르는 사회가 되었다.

인간들의 장례라는 것은 가장 큰 마무리 의식으로써 망자와의 마지막을 고하는 예식이다. 비록 한낱 흙으로 돌아갈 사체일지라도 그가 살아온 동안의 인격과 권리의 연장이 단번에 끊길 수 없음과, 살아있는 가족과 그와 이웃한 인간의 고통 그리고 염원이 한 치의 흘림 없이 그대로 배어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윤리의식 때문에 마지막일수록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의식이 될 것이다.

반려동물과 풍부한 정서 교감을 이룰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었던 사람들에게는 비약적인 비유라 느껴질지 모르겠으나, 애견인들 사이에서는 반려동물의 죽음에도 이러한 잣대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의 삶과 깊은 유대 관계를 맺으며 내 정서에 영향을 미치던 그 존재의 가치가 인간과 동물이라는 단적인 분류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려동물의 사체를 다룸에 있어 도덕적 잣대가 요구되어지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 본다. 이는 또 한편으로는 인간의 상처받기 싫은 영혼을 위한 잣대일 수도 있을 것이고 심각하게 오염 , 훼손되는 환경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려동물이라는 존재가 죽었을 때 보호자가 취하고자 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애견문화가 일찍이 앞서 간 서구 사회나 가까운 일본 등에서는 동물 장묘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되어 화장 처리와 납골당, 심지어는 반려동물 묘지공원까지 합법적으로 준비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대비하는 것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주민들 몰래 아파트 화단에 묻어주는 불법도 저지를 필요가 없다. 또한 살아생전에 함께 했던 그들과의 추억을 언제든지 되새기며 만나볼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동물 사체에 대한 처리 규정이 하루속히 입법화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쓰레기봉투에 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되거나 쉬쉬하는 가운데 불법 매립하여 애견인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것은, 실현 가능한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체 처리 규정의 입법화만이 해결 방법의 능사는 아니다. 모든 것은 사후 처리에 앞서 사전 예방이 중요한 것이고, 환경과 경제를 생각하는 폐기물의 관점에서 보자면 배출양의 극소화가 더 중요할 것이다.

반려동물의 사체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러려면 애견을 기르며 관리하는 것에 대한 법적인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의 법률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한 상태에서, 동물을 유기(遺棄)하거나 분실하는 사례가 해마다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애견 등록제와 인식칩 부착의 법제화를 통해서 줄여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역시 애견문화가 앞서서 발달한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며 그러므로 인해서 떠돌이 개, 고양이들을 감소시킨 장치이다.

또한 지금 비정상적으로 확대되어 있는 애견 문화의 바른 정립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애견문화 이면엔 문화지체 현상에 의한 부조화가 나타난다. 아직도 애완의 개념으로 무책임하게 양육하면서 무분별한 번식과 관리를 주체할 수 없어서 제3자 양도를 거치다가 길거리로 내몰리는 동물들이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떠돌이 개, 고양이들은 번식을 통제하기가 힘들고, 이 동물들은 결국 포획되어 대부분 죽임당하는 것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한다.

아무리 입법이 잘되어 있어도 애견인 스스로가 바른 가치관으로 동물을 양육하지 않으면 법은 무용지물이다.

따라서 반려동물 사체의 문제는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반려동물 문화 정립과 동물보호법의 개정, 동물 사체 처리 규정에 관한 법률 등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문화를 영유한다는 것은 그 안에서 해결해야 할 새로운 숙제들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애견 문화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현상은 외면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애견 문화에서 파생된 문제를 공동의 숙제로 인식하고 힘을 합쳐 같이 풀어나가게 되길 희망한다.

- 이 글은 '쓰레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운동협의회(약칭 : 쓰시협)' 의 계간지 2004년 봄 호에 기고되는 글입니다. -

* 쓰시협: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촉진을 위하여 전국 240개 시민단체가 모여 결성한 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