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불법 농장에서 두 달 간 방치되어 사망한 말 8마리가 사체로 발견됐다. 부패하여 뼈까지 드러난 말 사체가 나뒹굴던 현장은 실로 비참하고 끔찍했다. 게다가 이 참혹한 현장에는 발견 당시 15마리 말이 더 남아있었다. 살아남은 말 역시 상황은 열악했다. 갈비뼈가 불거질 정도로 야위고 곳곳에 상처를 입은 몸으로 굶주리고 방치된 말 15마리는 죽음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지경에 처해있었다.
말이 집단으로 방치되고 폐사한 사건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지만, 말을 위한 보호 및 복지 제도가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이번 사건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마주는 이미 작년에도 말 불법 도살로 벌금을 선고받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2022년 8월에도 충남 부여 폐축사에 경주 퇴역마 등 말 4마리를 방치하여 그 중 2마리를 죽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말 학대가 지속되는 중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가 이를 해결할 의지 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과 같이 허울 뿐인 말 이력제로는 말의 실제 현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허점을 이용해 많은 기관과 시설에서 해당 마주에게 퇴역마를 처분하는 일이 이어져왔다. 심지어 서울경찰청 기마대 퇴역마와 같이 공공기관에서 헌신한 말 조차 이곳에 매각되었고, 현재는 생사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현재 시설에 남은 18마리 말의 마이크로칩을 조회해본 결과 말산업정보포털상 기록 오류는 심각한 수준이다. 마이크로칩 조회가 가능했던 16마리 중 1마리를 제외한 15마리가 포털상 소유주와 실제 소재지가 달랐다. 심지어 버젓이 살아있는 3마리가 포털상에서는 이미 폐사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즉 지금까지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밝혀지지 않았을 뿐, 해당 마주가 소유했던 수많은 말이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공주시 말 집단 학살 사건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말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번에 굶주리다 사망한 말 뿐만 아니라 국내에 있는 모든 말이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상관없을만큼 사회의 방임 속에서 방치되고있다. 동물의 권리나 지위와 같은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는 동물에게 마땅히 제공해야할 최소한의 보호∙관리 의무 조차 단 한 줄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몇 년 간 시민사회가 그토록 간절하게 말 복지 법제화를 요구해왔으나, 현실은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 책임의 중심에는 경마를 통해 매년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한국마사회와 동물복지 담당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있다. 한국마사회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2월, 말 복지 대책을 마련한다며 ‘말 복지증진 추진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이후 8개월 간 유의미한 성과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명무실하게 운영되었다.
이에 오늘 우리는 잇따르는 말 학대를 규탄하고, 경주 퇴역마를 비롯한 말 복지 법제화를 촉구하기 위하여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를 결성하고, 이 자리에 모였다. 범대위 결성은 지금껏 오직 산업의 도구로만 취급되어온 말이라는 동물에 대한 우리 사회 시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 어떤 동물도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되다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물건과 같이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을 말에게까지 적용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새기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공주시는 사체와 함께 방치된 15마리 말을 피학대 동물로 격리 조치하라!
하나,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마사회는 말 학대 방지 대책과 복지 수립을 위한 입법에 즉각 나서라!
2024년 10월 23일
말 복지 수립 범국민대책위원회
(동물과함께행복한세상, 동물권단체 하이,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 PNR,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을위한행동, 동물자유연대, 동물해방물결, 비글구조네트워크, 생명·환경권행동 제주비건, 생명체학대방지포럼, 전국동물활동가연대, 제주동물권행동 나우, 채식평화연대, 충남동물행복권연구소, 한국말복지연구소 총 15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