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길고양이는 어디에나 있다 - 대만 길고양이 이야기

사랑방

길고양이는 어디에나 있다 - 대만 길고양이 이야기

  • 정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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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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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초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외국에 갈 때마다 무엇보다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그 나라 동물이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것인데 이번에 다녀온 대만은 고양이 마을을 만들고 관광지로 운영하고 있어 고양이 마을을 비롯해 대만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합니다.

고양이 마을이 위치한 허우통 역에 들어서면 제일 처음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판과 밥그릇이 눈에 띕니다. 역에서 고양이 마을로 건너가는 길목 곳곳에는 밥그릇, 물그릇이 놓여 있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은 나른한 표정으로 졸다 깨다 하면서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고양이 마을 곳곳에는 고양이들이 쉬기도 하고 햇빛이나 비도 피할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번듯한 집이 아니더라도 스티로폼 박스에 바람을 막을 천막만 쳐놓는다면 길고양이들이 훨씬 수월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을텐데 지금의 우리나라 환경에서, 특히 건물이 빽빽한 도시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마 우리나라 길고양이들은 올해도 방금 시동을 끈 자동차의 온기에 기대어, 혹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건물 지하에 숨어들어 겨울을 보내겠죠. 그렇게라도 올 겨울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길 바래봅니다.
 

대만에서 만난 길고양이들입니다. 고양이도 성격이 천차만별이라 간식 봉지까지 뜯어먹을 기세로 식탐을 부리는 고양이, 끈 하나만 흔들어도 십 분을 넘게 지치지 않고 노는 고양이, 누가 지나가든 떠들든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만 하는 고양이까지 각자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겉모습은 우리나라 길고양이들과 참 닮았는데 하는 행동은 많이 다릅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보는 길고양이들은 사람 소리만 나도 도망가고 숨어대서 고양이를 싫어했는데 외국 어느 나라를 가보니 길고양이인데도 사람을 좋아하고 애교를 떨어서 참 예쁘더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조금 씁쓸해집니다. 꾸준히 길고양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길고양이라고 해서 무조건 사람에게 적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그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는 길고양이가 예뻐 보이셨나요? 그렇다면 길고양이를 만났을 때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는 대신 눈을 맞추고 천천히 눈을 깜빡이는 눈인사를 건네주세요. 자신에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 겁 많던 길고양이가 언젠가는 여러분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할지도 모른답니다.

 

우리나라처럼 대만도 TNR을 하는지 귀 끝이 살짝 잘려있는 길고양이를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보통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tnr 표식은 중성화 수술을 한 고양이의 왼쪽 귀를 1cm 정도 자르는 것인데 사진에서 보면 고양이들의 오른 쪽 귀가 잘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대만 동물단체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대만에서는 쉽게 성별 확인이 가능하도록 암컷 고양이는 오른쪽 귀를, 수컷 고양이는 왼쪽 귀를 자른다고 합니다.

대만에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잘 먹지 못해 마른 고양이, 어딘가 아픈 고양이, 털 손질을 제대로 하지 못해 꼬질한 고양이 등 고단한 길 생활을 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만의 길고양이가 우리나라 길고양이와 다른 점은 누군가 자신을 해칠까 긴장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여유롭고 느긋하게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이곳 사람들 모두가 길고양이를 좋아하고 돌보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길고양이도 환경을 이루는 구성원의 하나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고양이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에게까지 이어질 때면 그냥 길고양이를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일이 너무 먼 길처럼 느껴져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길고양이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고 손을 내밀어 주는 여러분 모두가 길고양이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오늘도 굶주림, 추위와 싸워가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보며 저 또한 지친 마음을 일으켜 다시 한번 힘을 내 보려 합니다.

이제 겨울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길고양이에게는 더욱 혹독한 계절입니다. 부디 모든 길고양이들이 추운 겨울 잘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랍니다.




댓글


안혜성 2013-10-30 23:52 | 삭제

한국도 어서 이런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부러운 풍경이네요


홍현신 2013-10-30 15:01 | 삭제

정말 정말 부럽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어요~!


윤정임 2013-10-30 15:36 | 삭제

좋은 이야기 감사해요 ~ 몇 나라 가보지는 못했지만 우리보다 못 살고 덜 배운 나라들도 동물들의 삶은 우리보다 나았어요.. 마르고 초췌한 동물들은 어디에나 있지만 여유롭고 느긋한 모습이 불행하다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갈 길이 멀지만 저 또한 지친마음 일으켜 다시 한번 힘을 내겠습니다. 화이팅~!


이경숙 2013-10-30 17:47 | 삭제

정말 부러운 ....ㅠㅠ
우리는 언제쯤...ㅠㅠ


전미경 2013-10-31 13:00 | 삭제

우리나라는 언제 이렇게 될수 있을까.. 너무 부럽네요.


길지연 2013-11-05 10:27 | 삭제

대만과 중국은 한 민족이었는데 역시 자유 민주주의를 택한 나라는 다르군요.
우리나라 아직 자유 민주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