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복지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최근 동물실험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동물실험은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오랫동안 지속돼 왔고 인류의 건강과 연관돼 있다는 점, 또 산업을 둘러싼 이익집단들의 이해 관계 등의 이유로 단시간에 금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동물을 실험에 이용하는 일에 대한 찬반 양론도 팽팽히 대립한다.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실험이 인류의 생명 연장이나 질병 치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동물실험을 대체할 수 있는 실험법이 충분히 개발돼 있으며, 이미 안정성을 인정받은 원료로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활동을 해왔다.
국내외 동물보호단체의 노력과 화장품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세계적인 추세는 국내 소비자들도 동물실험 여부 등 윤리적 가치를 고려한 상품의 구매를 선호하는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해서 소비자를 끌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2011년 6월 16일부터 4달 동안 국내 소비자 2,44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95.1퍼센트가 ‘시중에 판매되는 화장품들이 동물실험 여부를 보다 명확하게 표기해야 한다’고 대답했고, 97.4퍼센트가 ‘제품이 동물실험을 거쳤는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다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선호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동물실험에 대한 여론과 사회적 흐름의 변화를 반영, 일부 동물보호단체는 국내 기업들에게 해외 기준을 토대로 설문지를 보내 확인하는 방식으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회사’를 선정하고 있고, 2012년 8월 선진통일당 문정림 의원은 화장품의 제조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했는지 여부를 화장품 포장지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화장품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동물실험 여부 표기를 의무화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다. 이는 자칫하면 기업들이 동물실험을 의뢰하거나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를 계속해서 사용하면서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면죄부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에서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법적 조항 없이 화장품법에서 표기만을 의무화하는 것은 효과적으로 화장품 동물실험을 규제하는 방안이 될 수 없다.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수준을 뛰어 넘어, 불필요한 동물실험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동물보호법에서 화장품의 생산,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을 금지해야 한다. 또한, 라벨링 의무화 이전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조건의 기준이 명확히 정해져야 한다.
화장품에 적혀있는 “크루얼티 프리 (Cruelty-free)”, 과연 그 의미는?
현재 미국 FDA에서 허가하는 “크루얼티 프리 (Cruelty-free)” 라벨링은 다음 다섯 가지 사항 중 어떤 것도 의미할 수 있기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1. 완제품은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지만 원료에 대한 실험은 행해졌다. (현재 화장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원료의 대부분은 과거에 동물실험으로 안정성을 검증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완제품과 원료에 대해 동물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제품에만 표기를 허가한다면, 사실상 허가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2. 생산자가 직접 동물실험을 실행하지 않았지만, 공급자 또는 제 3업체가 실험을 대행했거나, 혹은 다른 회사의 동물실험 결과 데이터를 이용했을 수도 있다.
3. 동물실험이 국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제 3국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4. 완제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이 지난 5년, 10년, 20년 등 화장품 회사에서 임의로 정한 일정 기간 동안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전에는 이루어졌거나 혹은 앞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5. 완제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이 지정된 날짜 이후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루어 지지 않는다. (CCIC 의 리핑 인증마크가 정의하고 있는 기준)
즉, “Cruelty-free (잔인성을 배제한)” 라벨은 법률적으로 효력이 있거나 정부에서 승인한 라벨이 아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구매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은 직접 동물실험을 실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회사의 제품들과 난무하는 복잡한 정보들 사이에서 스스로 알아보고 선택을 하거나, 동물보호단체 등 다른 기관이 제공하는 데이터에 의존해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이 법적으로 요구되거나 혹은 금지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폐단이다.
회원국간의 기준을 통일하고 단계적으로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를 완성한 유럽 연합
영국은 1998년에 화장품 완제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 실험의 허가를 내는 것을 중단했고, 오스트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도 자국 내에서 화장품의 동물실험이 이루어지는 것을 법적으로 규제했다. 2006년에는 크로아티아, 2007년에는 이스라엘이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동물실험을 금지했다.
이에 유럽 연합은, 회원국 간 각기 상이한 화장품 법을 대체하기 위해 화장품 지침 76/768 EEC 을 개정한 제 7차 화장품 법 개정안(the 7th amendment of the cosmetics)을 2003년에 발표해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 금지와 함께 10조 40항으로 이루어진 신규 화장품 지침을 공개했다. 이 개정안에서는 위원회가 화장품에 이루어지는 동물실험에 대해 대체실험법 존재의 여부에 따라 순차적인 일정표를 수립하고, 단계를 나눠 법으로 금지하는 절차를 거쳐왔다. 그 첫 번째 단계로 2009년까지 유럽 내에서 화장품과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과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동물실험을 대체할 대안이 아직 미비하다고 평가된 반복투입 독성 실험 (repeated-dose toxicity), 물질이 생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reproductive toxicity), 독성 발생에 대한 연구 실험 (Toxicokinetic) 등 세 분야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마지막 단계가 완료되는 2013년 3월까지 연장기간을 둬서 실효성을 높였다. 이와 같은 일정표를 준비하기 위해서 위원회는 규제 수용성 검토를 포함한 필요 시간을 예상한 보고서 1의 초안을 작성한 전문가들로 임시 그룹을 결성해 최상의 조건으로 동물 실험의 전면적 대체를 이룰 수 있도록 했고, ECVAM (유럽 대체실험검증센터)는 이와 관련된 모든 작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이에 반해, 라벨 표시 사항은 현재 우리나라 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품 책임자 명 또는 업체 명, 수입 제품의 경우 원산지 국명, 포장 시 내용물의 중량 또는 부피, 사용 유효기간, 사용시 주의 사항, 제품 제조번호, 성분 리스트 등이 표기되면 된다. 이 규정에서 책임자는 해당 제품에 대한 규정 적합성을 보증하는 보증인으로써 제품 출시 때 집행 위에 이를 통보해야 한다.
실제로 이렇게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한 법적인 전면 금지가 진행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이러한 예외 사항들 때문에 화장품에 표기하는 라벨에는 동물실험 여부 표기를 의무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7차 개정안의 마지막 단계가 완성되는 2013년부터는 실험이 실행된 장소를 불문하고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의 판매가 금지됨에 따라,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은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된다.
유럽연합 이외 국가들의 화장품 동물실험 금지법
비교적 최근에 화장품 동물실험을 금지한 크로아티아의 경우, 2006년 12월 1일 발효된 동물보호법 (Animal Protection Act) 23조에서 다음과 같은 경우의 동물실험을 금지하는 조항을 제정했다.
<동물 실험 금지법 제 23조>
다음과 같은 목적을 위한 동물 실험을 금지한다.
1. 무기, 탄약 혹은 관련된 기구, 전쟁 도구와 일반적인 방사능 효과에 대한 테스트
2. 담배와 청소, 소독을 위한 화학 제품의 개발을 위한 연구
3. 화장품의 원료, 합성원료, 완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
4. 알코올과 중독성 물질의 효과에 대한 연구 (동물 실험을 대신할 대체실험법이 개발되지 않은 경우는 제외된다.)
즉, 법이 발효된 2006년부터는 자국 내에서 화장품의 생산과 개발을 위한 연구를 금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 외국에서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의 사용이나, 동물실험을 한 수입 제품의 판매는 금지하지 못한다는 허점이 있다. (크로아티아는 2013년 유럽 연합에 가입될 예정으로, 2013년 이후에는 유럽 연합 규정을 따라야 한다.) 이와 비슷한 법을 2007년 제정한 이스라엘의 경우, 2015년부터는 원산지를 막론하고 동물실험을 거쳤거나 동물실험을 거친 원료를 사용한 화장품과 생활용품에 대한 판매를 금지하는 법을 함께 실행하게 되며, 2012년 발표된 개정안에서는 화장품에 동물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표기를 의무화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화장품 동물실험에 대한 법적 금지와 동물실험 여부 표기에 대한 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다”는 문구에 대한 기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우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서약하게 하는 것은 동물실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것 이외의 큰 의미나 효력은 사실상 없다. 또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막연히 동물실험 여부를 제품에 표기하는 것을 의무화면 기업들이 규제를 피해 동물실험을 계속하면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라벨링에 대한 규제를 마련하기 전에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에 국내에서 화장품의 생산, 개발을 위한 동물실험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추가돼야 하고,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제품은 판매를 금지하는 화장품 법이 우선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유럽의 경우처럼, 존재하는 대체실험법이 안정성을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의 실험은 예외를 둬서 실행하되, 언제까지 동물실험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드라인을 정해 대체실험법의 개발과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화장품 동물실험 표기를 의무화 하려면,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았다”고 표기하기 위해 부합돼야 하는 조건에 대한 기준이 먼저 정해져야 한다. 현재 화장품 생산에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원료들이 예전에 동물실험을 거쳐 안정성이 입증됐다는 점을 고려해서, 기존에 나와 있는 안정성에 대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되, 앞으로 새롭게 행해질 동물실험을 막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정 날짜를 지정해 지정된 날짜 이후에 완제품과 원료, 합성 원료에 대한 동물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은 제품을 인증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는 한 기관의 노력으로는 이루어 낼 수 없다. 정부는 관련 법안을 마련하고 동물실험대체실험법 검증센터 등의 기관과 협력해 대체실험법 개발에 힘써야 하며, 기업은 국내 화장품 시장의 글로벌화와 윤리적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물실험을 중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알 권리를 주장하고 동물 복지 정신에 입각한 소비를 하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이런 삼박자가 맞춰지기 위해 동물자유연대는 정부, 기업에게 협조와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소비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윤리적 소비를 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접착제의 역할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