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누렁이....詩 서정홍

사랑방

누렁이....詩 서정홍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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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2.1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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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 한 마리 사야지 사야지

노래를 부르던 아버지가,

자식 새끼들 공부시킬라 카모

소 한 마리는 키워야 한다고

애태우던 어머니가,

은순이네 집에서 송아지 한 마리 사 오셨다.

우리는 그 송아지를 누렁이라 부르기로 했다.


식구가 하나 늘어서 더 바빠지겠다는 아버지.

바쁘면 바쁜 대로 살면 된다는 어머니.

누렁이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다는 누나.

빈 외양간에 누렁이가 들어오고

우리 식구들 아침부터 내내 바쁘다.


2.

우리 식구가 된 누렁이는

어쩐 일인지 맨날 울어 댔다.

누렁이 우는 소리 때문에

우리 식구들 잠 한숨도 편하게 못 잤다.

주인 바뀌고 일 주일쯤 지나면

울지 않을 거라더니

누렁이는 이 주일이 지나도 울어 댔다.


“저 망할 놈의 송아지

얼매나 지 에미가 보고 싶었으면..

이눔아, 이제 그만 울어라 그만 울어.

누구 가슴 터지는 꼴 볼라꼬 저러나.“


우리 아버지, 정말

가슴 터지는 꼴 볼라꼬 저러는지

누렁이는 밤이 되면 더 크게 울어 댔다.


3.

누렁이 우는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을 사람들도 잠을 설쳤다고 한다.

길 건너 은순이네 집에 있는

누렁이 어미까지 밤새 울어서

온 마을이 시끄러웠다고 한다.

누렁이가 울면 누렁이 어미가 울고

누렁이 어미가 울면 누렁이가 울고.


은순이네 할아버지는

두 번 다시 같은 마을 사람에게

소 안 판다고 한다.


4.

누렁이가 목이 터져라 울 때마다

바람처럼 은순이네 할머니가 오셨다.

누렁이가 가장 좋아하는

콩깍지 한 아름 안고서.


“누렁아, 이제 그만 울어라이.

너거 새 주인이 얼매나 맴이 아프겄노.

그라고 니가 자꾸 울면

이 할미 맴도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진다 아이가.“


은순이네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누렁이는 왕방울보다 더 큰 눈을

껌벅껌벅거리며 머리를 숙였다.

할머니 말씀을 다 알아듣는 것처럼.


5.

누렁이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났다.

어미 보고 싶어서

울다가 목이 부었는지

울다가 지쳐 버렸는지

누렁이는 이제 울지 않는다.


내가 외양간 가까이 가기만 하면

슬슬 피하던 누렁이가

이제는 반갑다고 히죽거리며 다가온다.


어미 보고 싶다고

목이 터져라 울어 대던

누렁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프다.


6.

비가 밤새 내리고

또 내리고..


이른 아침부터 비를 쫄딱 맞고

꼴 한 짐 지고 오신 아버지.

아무리 비가 와도

차라리 내가 굶지

말 못하는 짐승을 굶겨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


지난해 봄부터

아버지 주는 꼴만 먹고 자란 누렁이는

아버지 발소리만 들어도

좋아서 펄쩍펄쩍 뛴다.


7.

누렁이 다리와 엉덩이에

큰 쇠파리들이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다.

“에이그, 저 못된 쇠파리 놈들이

우리 누렁이 피 다 빨아먹는다.“

아버지는 긴 싸릿대로 쇠파리들을 쫓아낸다.

쫓아내면 또 금세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다.


귀찮다 귀찮다 몇 번 꼬리를 치고

몸을 흔들다가 누렁이는 그대로 둔다.


8.

누렁이는 날이 갈수록

진짜 우리 식구가 되어 갔다.

밥 먹을 때 밥 먹고

놀 때 놀고

잘 때 자고.


누렁이는 날이 갈수록 동무도 늘어났다.

누렁이 똥 속에 들어 있는

곡식을 쪼아먹고 살이 붙은 삐순이는

정말 고마운 동무다.

맨날 귀찮게 다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를

팔짝팔짝 뛰면서 잡아먹어 준다.


무엇이 그리 신나는지, 틈만 나면

외양간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진돗개 복실이도 좋은 동무다.


“저런, 저런!

닭들이 누렁이 발에 밟히면 우짤라꼬.

누가 닭장 문을 열어 놓았노?“


어머니 걱정 소리에

누렁이는 놀러온 삐순이와 복실이가

발에 밟힐까 봐 조심조심 발을 뗀다.

한 해가 다 가도록 서로 싸우지 않고

밟히는 일도 없이 잘 지낸다.


9.

누렁이는 하루 내내 먹고

배가 불룩한데도

가끔 먼산을 바라보고 운다.


우리 집에 함께 산 지

한 해가 지났는데도

가끔 어미 보고 싶어서 운다.


10.

어머니 아버지는

산밭에 고구마 캐러 가시고

나는 혼자 외양간 아래

고추밭에서 고추를 땄다.


고추를 다 딸 때까지

누렁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큰 눈을 끔벅끔벅거리면서.


누렁이가 곁에 있으면

고추밭에 뱀이 나와도 무섭지 않다.


11.

누렁이는 아무리 배가 홀쭉해도

먹는 풀 못 먹는 풀

잘 가려서 먹는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잘 가려서 먹는다.

천천히 씹어서 맛있게 먹는다.


배고프면 제대로 씹지도 않고

허겁지겁 먹다가 배탈이 나서

식구들 걱정만 끼치는 나보다

누렁이가 더 똑똑하다.


12.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누렁이는

아버지 따라다니며

높은 산밭도 갈고 다랑논도 갈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잘한다.


“저러다가 누렁이 힘들어서 병나겠소.

좀 쉬어 가면서 하소.“

어머니는 가끔 누렁이 걱정을 한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길을 잘 들여야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이랴 자랴 워워.” 쉬지 않고 일하신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도

아버지가 고삐를 잡고

일하러 가자고 하면,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누렁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일꾼이다.

누렁이 지나가는 논밭마다

우욱 욱 땅 파지는 소리

쓰윽 쓱 땅 고르는 소리.


13. 

누렁이 앞세우고

논 갈고 계신 아버지.

농사일에 지쳐

담배 한 대 물고 논두렁에 앉으면

누렁이도 아버지 곁에 앉는다.


14.

논에 모 심고 논두렁에 콩 심고

바쁜 일 거의 끝났을 무렵,

마을에 자주 들랑거리는 소장수 아저씨가

우리 집 누렁이를 가만히 보더니

뒷다리가 굽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리 잘 먹여도

더 이상 크지도 않고

소값도 제대로 못 받을 거라고 한다.

이런 소는 집에 오래 두면

재수 없다고 팔아라 한다.


‘뒷다리가 조금 굽었으면 어때.

착하고 잘 먹고 일 잘하면 되지.

누렁이 뒷다리 굽은 것하고

우리 집 재수 없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는 소장수에게

몇 번이나 하고 싶은 말을

아버지 때문에 참았다.


소장수가 우리 집에 왔다 간 다음날부터

아버지는 가끔 누렁이를 팔아야겠다고 했다.

‘아버지, 안 돼요.

누렁이 없으면 심심해서 안 돼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또 참았다.


15.

정부 보조금 조금이라도 나올 때

누렁이 팔아서 경운기 사야겠다는 아버지를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아버지, 누렁이 꼭 팔아야만 경운기 살 수 있어요?”

“경운기 사면 농사 짓기도 수월하고

누렁이 고생 안 해도 되니 파는 게 좋겠다.

서운해도 내일 팔기로 했으니 그리 알아라.“


내일이면, 내일이면

소장수가 와서 데려간다는

아버지 말씀에

우리 식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6.

누렁이 눈을 가만히 보면

바보처럼 착하게 보인다.

누렁이 눈을 보면

거짓말할 수가 없다.

누렁이 눈은 너무 커서

내가 누렁이 눈 속으로 쑥 들어간다.


17.

내일 팔려가는 줄도 모르는 누렁이는

나를 보고 좋다고 다가왔다.

누렁이와 지내는 것이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아버지가 볼까 얼른 눈물을 닦고

나는 누렁이가 좋아하는 억새풀도 주고

지난 가을에 쌓아 둔

콩깍지, 옥수숫대, 볏짚도 잔뜩 주었다.


내일 팔려가는 줄도 모르는 누렁이는

나를 보고 고맙다고

큰 눈만 끔벅끔벅거렸다.

울지 않으려고 참고 참아도

또 눈물이 나왔다.


18.

일요일 점심 때

큰 짐차를 몰고 소장수 아저씨가 왔다.

소장수는 내리자마자 짐차와 외양간 사이에

날판때기를 놓았다.

그리고 누렁이 입과 목 사이를

끈으로 홀치어매더니

짐차에 싣기 위해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어도 보고 난리다.


누렁이는 짐차에 타지 않으려고

네 다리를 땅에 구부리고

입에 거품을 내면서 버티었다.

“소 한 마리도 제대로 싣지 못하면서

소장수 우찌 하오?“

“이렇게 힘센 소는 처음 봤소.

바닥에 다리가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네.“

“에이, 막걸리나 한 사발 마시고 다시 합시다요.”

“......”


아버지와 소장수는 막걸리를 마시면서

몇 번 더 실랑이를 벌였다.

누렁이는 눈물만 뚝뚝 흘리고..


19.

누렁이는 구부렸던 다리를 펴고

억지로 짐차에 올랐다.


어머니는 소장수가 올 때부터

한 번도 바깥에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와 돈을 주고받던 소장수는

누렁이를 싣고 가 버렸다.

아버지는 텅 빈 외양간 앞에서

마시다 남은 막걸리를 혼자 마시고 있었다.

누나는 울면서 짐차 따라가고

나는 누렁이 싣고 가는

짐차 꽁무니만 바라보았다.


흔들흔들 짐차에 실려가는 누렁이는

자꾸만 자꾸만 뒤돌아 보았다.


20.

힘께 밥을 먹고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잠을 자던 누렁이는 영영 떠났다.

누렁이가 누고 간 똥무더기에서는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누렁이는 이제 우리 집에 없다.


누렁이가 먹다가 남겨 둔 억새풀도

콩깍지, 옥수숫대, 볏짚도 그대로 남아 있고

귀찮도록 누렁이 다리에 붙어서

피를 빨아 먹던 쇠파리도 그대로 있고

그 못된 쇠파리놈들 쪼아먹던 삐순이도

그대로 있고

장난치고 놀던 진돗개 복실이도

그대로 있는데..

 

 

 

 

                                                                            < 서정홍 시인.. 누렁이 >




댓글


정재경 2009-02-18 18:58 | 삭제

눈물나네요. 정이라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것인데요. 누렁이가 엄마를 보고 싶어 밤새 목터져라 울듯. 때때론 정말 자연과 동물과 순수하게 살고 싶네요. 효율과 효용에 의한 사고 팜이 없이, 그냥 순수한 사랑과 자연을 벗삼아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알아도 모르는척, 그냥 자연에 파묻혀 누렁이와 지냈으면 합니다. 가슴 찡하네요...왜 인간은 동물들이 인간을 이해하는 것처럼 그들을 이해하지 못할까요? 순수하게 그들과 어우러져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세상을 오늘은 한번 꿈꿔봅니다.


이경숙 2009-02-20 00:27 | 삭제

ㅠㅠ........ㅠㅠ.............ㅠㅠ


홍현신 2009-02-20 16:06 | 삭제

짧은 시가 아닌데...
떨리는 가슴으로 단숨에 읽어지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