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지트 바르도, 한국 개고기 문화 독설 퍼붓더니…
요즘엔 말고기 먹는 프랑스인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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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고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낙인찍힌 브리지트 바르도. 74세의 고령이지만 아직도 왕성한 동물보호운동을 펴고 있다.
1956년 뒷날 첫 남편이 된 로제 바댕 감독의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 출연해 일약 세계적인 배우로 각광받은 바르도는 관능미의 섹스 심벌로 미국의 메릴린 먼로(MM)와 쌍벽을 이루면서 1960년대 세계 영화계를 달궜다.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한 후 1973년 ‘콜리노의 즐거운 이야기’ 출연을 끝으로 39세의 나이에 파란만장했던 영화계에서 은퇴했다. 그 후 동물보호운동에 투신해 제2의 인생 막을 연 뒤 30여년 동안 동물보호에 헌신하면서 숱한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곤 했다. 때로는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당하면서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74세의 고령이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브라질의 휴양도시 부지우스에 세워진 브리지트 바르도 청동상. (동상 사진)
프랑스인들에게 바르도는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다. 한때 바르도는 그가 벌어들인 연간 외화가 프랑스 자동차산업보다 더 많았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의 전성기도 있었다. 이때는 그가 바로 프랑스의 자존심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애정도 크지만, 동물보호운동에 전념하면서부터 그가 보인 증오에 가까운 인종차별적 발언과 상대 문화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과 극단적인 편견으로 ‘극우 파시스트’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바르도에게 한국은 여전히 개고기를 먹는 야만의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전후해 바르도가 표출한 한국 개고기 문화 비판은 많은 한국인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를 잡아먹는 사람은 국적을 막론하고 바르도에게는 모두 야만인이다.
그가 오랜 세월 동안 말고기를 먹는 프랑스인들에게 드러내는 증오심은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에 대한 증오심과 그 농도가 다를 바 없다. 그는 이 증오심만큼은 인종차별이 없다.
바르도가 벌이는 말고기 문화 반대운동의 대상인 프랑스는 말고기 문화 역사가 가장 오랜 나라다. ‘타타르 스테이크’로 알려진 말고기 음식은 인기 요리로 뿌리내렸고, 현재 프랑스에는 말고기 푸줏간만 1000곳이 넘는다. 이런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당장 캠페인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바르도는 과거의 명성을 배경 삼아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려 한다. 최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동물의 생활 조건과 권위를 지켜주는 기구를 설립할 것을 주장해 동물보호위원회 설치 약속을 받아내는 등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동물 학살이 자행되는 곳에 직접 달려가 반대운동을 주도해 왔다.
바르도는 2003년에 펴낸 저서 ‘침묵 속의 외침’에서 프랑스 내 무슬림과 불법이민자, 동성애자, 좌파, 실직 범죄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그는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해서도 ‘야만적’이라며 종전의 비난을 되풀이했다. 그는 “프랑스가 무슬림과 불법이민자들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고 비난해 국가모독죄로 벌금형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 밖에도 인종차별주의 혐의로 두 차례나 기소당하는 등 곤경에 처했으나 그의 거친 견해와 소신엔 변함이 없다.
◇브리지트 바르도가 2006년 3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바다표범 사냥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때로 사람보다 개를 더 사랑한다는 비난을 듣는 바르도의 동물 사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바르도는 1960년 두 번째 남편인 배우 자크 샤리에와의 사이에서 아들 니콜라 샤리에를 낳았다. 그의 유일한 혈육인 니콜라는 할머니 품에서 양육되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고, 지금 노르웨이에서 거주하지만 모자 사이는 냉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도는 아들을 임신했을 때 “뱃속에서 종양이 자라는 것 같았다”고 술회할 정도로 아이에 대한 애정을 지니지 않았다. 26세 때 영화 ‘진실’을 찍고 생일날 면도기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 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명성과 인기가 주는 중압감 속에서 인간에 대한 실망이 인기 절정의 그를 죽음의 근처까지 몰아갔었다. 이때 인간보다 동물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더 커졌는지 모른다.
바르도는 장 마리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간부로 활약하는 사업가 베르나르 도르말레와 1992년 네 번째로 결혼, 현재 생 트로페즈의 별장 라 마드라그에 살면서 자신의 재단이 있는 파리를 가끔 방문한다.
프랑크푸르트=남정호 특파원
johnnam@segye.com
◇브리지트 바르도 재단(BBF)이 파리 시내에서 밍크 규탄 홍보판을 부착한 이동홍보차량을 운행하고 있다.
>> 브리지트 바르도 동물보호재단은…
브리지트 바르도가 53세 되던 1986년 프랑스 남부 생 트로페즈에서 세운 ‘브리지트 바르도 동물보호재단(BBF)’은 설립 22년 만에 전 세계 60개국 5만7000명의 정기 기부자를 확보하고 직원 30명에 동물보호 감시요원 323명을 배치한 대규모 재단으로 성장했다.
BBF는 본부를 파리 에펠탑 인근에 두고 애완동물과 야생동물의 보호와 학살 방지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인다. 동물 보호를 위한 이동광고에서 동물보호 집회, 동물병원 운영, 청원운동 등 각종 동물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세계고래잡이반대운동(GAWC)’, ‘유럽동물복지그룹’, ‘프랑스투우반대연맹’, ‘밍크자유연맹’ 등 세계 각지의 동물보호단체들과 연대해 중국, 루마니아, 인도네시아 등 20여개국에서 자행되는 동물 학살과 장시간 운송 등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BBF는 동물을 치료·보호할 수 있는 시설도 세계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노르망디에는 8ha 규모의 대지에 말과 소, 양을 보호하는 구역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호주에는 코알라 병원을 지었다. 아프리카 카메룬과 세네갈에는 영장류 구조센터와 표범 공원을 각각 운영 중이다. 불가리아에는 곰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태국에는 코끼리 병원을 설립했으며, 인도네시아에는 긴팔원숭이 집을 마련했다. 이 밖에 중국과 콩고민주공화국, 루마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동물 진료와 사료 공급 등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국내에서 BBF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매년 고양이 7000마리의 불임 시술과 프랑스인의 말고기 음식문화 철폐 캠페인이다. BBF는 이를 위해 TF1, 프랑스2, CNN 등 TV 방송과 르몽드, 르푸앵, 타임,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유수 신문·잡지 등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이 운동에는 이자벨 아자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패멀라 앤더슨, 폴 매카트니와 같은 세계적인 유명 연예인도 동참해 바르도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바르도는 22년 전 재단을 설립할 때부터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 화제를 낳았다. 당시 기금 마련을 위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각종 보석류와 가재도구 등을 몽땅 경매에 부쳐 300만프랑을 마련했다. 그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화장대는 경매 담당자가 구입해 되돌려주기도 했다. 지금도 바르도는 저서 등에서 들어오는 인세와 각종 수입을 재단에 내놓고 있다.
바르도는 최근 친분이 있는 언론인 앙리 장 세르바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나는 개인적으로 지닌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과거를 다 잊었다. 몸이 아파도 혼자서 나 자신을 돌본다”면서 ‘무소유의 삶’의 자세를 털어놨다. 그는 지금 몸과 마음 모두를 동물보호운동에 바치며 그 어느 때보다 정력적인 삶을 살고 있다. 동물보호를 위한 바르도의 남다른 열정에 세월도 그를 비켜가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남정호 특파원
- 기사입력 2008.01.04 (금) 20:38, 최종수정 2008.01.04 (금) 20: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