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서울대공원의 무분별한 개체번식과 전시목적의 냉동박제를 규탄한다
지난 6일 한 일간지에 ‘서울대공원의 슬픈경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서울대공원이 국제보호종인 그물무늬왕뱀 번식에 성공했으나, 법정 사육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2마리를 제외한 20여 마리를 냉동박제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동물원 측은 6월 유정란임을 확인하였고 기존 사육장 규모로는 부화가 예정된 새끼뱀을 모두 수용할 수 없어 긴급회의를 통해 불가피하게 가장 건강한 2마리만 살리고 나머지 뱀들은 냉동시켜 박제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에 동물자유연대가 동물원 측에 비공식적으로 질의한 바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하지만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서울동물원의 주장은 변명일 뿐이다. 번식의 목적과 시도단계부터 새끼뱀들의 비극은 예견된 것으로써, 숭고한 생명의 탄생을 한낱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시도였다.
서울동물원은 종보전 및 연구기관으로서 자신들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태를 통해 서식지외 종보전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동물원은 노아의 방주를 자처하나, 외래종을 본 서식지가 아닌 유리관 내에서 ‘보관’하는 것은 ‘보전’이 될 수 없다. 특히 그물무늬왕뱀과 같이 야생에서 절멸 위기에 있지 않은 외래종을 전혀 다른 기후의 전시시설 내에서 번식하는 것은 어떤 생태적 의미도 가질 수 없다. 이번 번식은 종보전으로 포장될 수 없으며, 오로지 기관의 연구성과와 업적, 경제적 요인 등 내부 필요에 의한 결정은 아니었는지 강한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번식 시도목적에 대한 의문과 함께 그 과정에서 서울대공원의 안일한 대처 또한 심각한 문제로 판단된다. 뱀의 특성상 수십마리의 번식이 예상되고 부화시 현 사육시설로는 법정기준을 초과할 것임은 충분히 예상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서울대공원은 사전대책 마련없이 번식을 시도하였으며, 유정란임을 확인하고도 알을 빼어 부화를 막는 등 사전조치없이 이를 방치하였다. 부화에 이르러 냉동하였다는 점, 아직 알 속에 있는 뱀, 알껍데기를 뚫고 나오는 뱀, 갓 부화한 뱀 등 다양한 모습을 박제로 만들어 이를 일반에 공개할 것이라는 점 등은 서울대공원이 박제표본을 얻기위해 부화를 방치한 것이라는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서울동물원은 5월 AZA(Association of Zoo & Aquarium) 인증을 위한 도전을 시작하였으며, 9월 아시아 동물원 최초로 인증을 획득하며 종보전 대표 동물원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인증획득 이후 들려온 첫 소식이 무분별한 번식으로 인한 생명의 죽음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실은 동물원의 ‘종보전, 교육, 연구’ 라는 선전이 여전히 허울에 불과하다는 우려를 낳는다.
종 보전을 빌미로 한 무분별한 번식사업으로 새끼 뱀들은 알에서 부화하기도 전에 운명이 결정되었다. 또한 부화의 과정을 박제하여 전시에 활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탄생과 동시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 고통의 순간은 영원히 박제되어 대중에 전시될 예정이다.
국내 동물복지, 종 보전의 대표를 자처하는 서울대공원의 부끄러운 실상을 보며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동물원이 종보전이라는 면죄부 뒤에 숨는 행태를 좌시할 수 없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정부와 동물원 등의 책임자에게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하나, 형식적인 종보전을 핑계로 한 전시시설 내 동물의 번식을 중단하라.
하나, 동물원의 종 보전, 교육, 연구 기능에 대해 원점에서 검토하라.
하나, 동물원은 생명의 시대에 걸맞고 우리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시설로 거듭나라.
2019년 12월 9일
동물자유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