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imal Home Essay>
"이게 얼마짜린 줄 알아?"
번식장이 돌아가는 한 동물학대는 계속된다.
-윤 정임 국장
지난 달 28일, 불법 번식장에서 치와와 64마리를 구조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 받는 번식장 동물들의 현실이 세상이 알려지고 사람들은 분노했고 동물 분양은 주춤했다. 하지만 분노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유행하는 품종의 어린 동물을 키우길 원한다.
동물자유연대는 지난 1월 28일, 충격적인 상황에 부닥친 동물들의 제보를 받았다. 제보와 함께 보내온 사진에는 치와와종으로 추정되는 수십 마리의 개들이 오물이 가득한 곳에 살고 있었고 오물 위에서 죽은 사체도 있었다. 동물자유연대는 바로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팀을 꾸려 개들이 있는 경기 평택시로 내려갔다.
개들이 있는 곳은 빈 집이 군데군데 있는 재개발촌이었다. 골목 어귀에서부터 악취가 풍겨왔다. 냄새를 따라 들어간 좁은 골목 끝에서 개들을 만났다. 작은 마당이 딸려 있는 주택이었고, 마당까지 개들의 오물이 가득 차 있었다. 개들이 잠을 자는 공간인 방의 환경은 더 처참했다. 개들은 변 위에서 먹고 변 위에서 자고 변 위에서 죽는 수렁에 갇혀 있었다.
개 주인은 불법 번식과 판매를 하는 업자였다. 그는 깨끗한 환경에서 보살핌 받는 강아지 사진을 도용해 인터넷에 판매게시물을 올려 25~35만원에 강아지를 판매 했다. 더럽고 열악한 곳에서 보살핌 받지 못한 강아지를 두고, 건강기록카드와 혈통서도 발급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피부병에 걸려 있는 개.
모르는 사람의 품에 힘 없이 기대고 있는 개.
쇼핑몰에서 물건 사듯
얼마 전, 강원도 강릉의 한 애겹숍에서 3개월 된 강아지를 던져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애견숍에서 강아지를 구입한 여성은 변을 먹는 식분증이 있는 강아지의 환불을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강아지를 던졌다.
어린 강아지가 변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어미젖을 먹으며 유대감을쌓고 사회성을 기를 중요한 시기에 어미와 강제로 헤어지게 만드는 동물 판매 시스템에 있다. 어미와 헤어진 어린 동물은 경매장으로 옮겨져 우악스런 손에 이리저리 들어 올려지고 던져지고 눈꺼풀과 입이 까뒤집히며 가격이 매겨진다. 사방이 유리인 애견숍 진열장에서 판매되기 전까지 불안정한 생활은 계속된다. 애정결핍과 스트레스로 변을 먹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번식장은 더 많이 더 빠르게 최대한 어린동물을 공급한다. 판매가 된 다음에 '소비자'들은 몸 길이가 예상했던 것 보다 길어지고, 귀가 제대로 서지 않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등 개인적 기준을 잣대로 말하며 반품과 환불을 요구한다. 반품된 개들은 다시 진열된다. 재판매되지 않으면 더 어린 동물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사람들의 눈길이 덜한 할인 코너로 옮겨간다. 병들어 죽으면 폐기된다.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이 마트나 인터넷 쇼핑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시스템과 일치한다. 이 개떡 같은 시스템이 유지되는데 공범이 많다. 동물의 고통 따윈 안중에 없는 번식, 경매, 판매업자는 물론이거니와 예방이 아닌 수습에만 세금을 쓰면서 방관하는 정부, 그리고 어리고 귀여운 동물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이 도긴개긴으로 이 악순환의 중심에 있다.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에서 보살핌 받고 있는 평택 불법번식장 치와와들.
어렵게 생산해야 어렵게 구매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단순하다. 어렵게 생산해야 어렵게 구매한다. 어렵게 구매한 만큼 어렵게 결정하여 버린다. 동물을 무분별하게 생산하는 번식장 규제가 가장 빠른 답이다. 그다음은 시간이 걸려도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정부는 온갖 동물학대의 근본 원인으로 무분별하게 난립하고 있는 동물번식장에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
평택시 불법번식장에서 개들을 구조하던 날, 개들을 빼앗겼다며 발악하던 번식업자가 우리 사회 반려동물의 위치를 정확히 꼬집어 소리쳤다. “이게 다 얼마 친 줄 알아? 어? 얼마 친 줄 아냐고! ” 살아 있는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사회. 우리는 과연 얼마짜리 사람일까.
강래완 2019-03-08 19:38 | 삭제
첫 번째 사진보고 차마 할 말이 없네요. 인간이라는 게 미안할 뿐입니다.
쫄 2019-07-01 18:58 | 삭제
돈주고사는건부끄러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