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그 불길 속에서, 살고 싶었던 건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반려동물

그 불길 속에서, 살고 싶었던 건 인간뿐만이 아니었다

  • 동물자유연대
  • /
  • 2025.04.07 17:37
  • /
  • 223
  • /
  • 5
















사상 최악이었다던 산불이 할퀴고 지나간 터전은 고통으로 신음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을 것 같던 거센 불꽃은 산에서 산을 타고 넘으며 민가까지 휩쓸었다. 멀리서 산불을 지켜보는 이들은 무력감에 발을 동동 굴렀고, 화마가 턱끝까지 다가온 지역의 사람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불안과 공포에 떨어야 했다. 그 거대한 두려움 속에서 간절히 살고팠던 이들은 비단 인간 뿐이 아니었다. 


동물자유연대는 산불 발생 초기였던 3월 21일부터 지난 3일까지 산불 현장을 누비는 중이다. 경남 산청에서 산불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짐을 꾸려 현장에 온 뒤 산불이 마무리된 지금까지도 아직 경북 지역을 떠나지 못했다. 


활동가들은 산불이 지나간 지역에서 화상을 입었거나 치료가 필요한 동물을 구조하기 위해 피해 지역 곳곳을 돌며 수색을 이어가고 있다.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시커먼 절망이 계속 모습을 드러냈다. 새까맣게 타버린 산과 무너져내린 건물 잔해, 그 속에서 숯덩이처럼 타버린 동물 사체가 연이어 발견됐다. 목줄로 발이 묶이거나 뜬장,  울타리 등에 갇혀 미처 피하지 못한 동물이 도망칠 시도도 못해본 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피해 지역을 샅샅이 살피며 운좋게 생존한 동물을 찾아냈지만 그 역시 마냥 안도하기는 어려운 모양새였다. 불길에 화상을 입었어도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사람이 대피한 집에 홀로 남겨져 방치된 동물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불길에 타죽을 뻔한 불행을 빗겨났지만, 그보다 조금 덜한 불행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 


이번 산불을 겪은 뒤 농림축산식품부는 재해 발생 시 동물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방침을 담은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끔찍한 사고나 사건이 벌어진 뒤 아동복지법이 개선되는 상황을 일컬어 ‘아이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라던 표현처럼 동물의 복지를 관장하는 법과 제도 역시 수많은 동물의 피와 희생을 거치고 나서야 만들어지곤 한다. 


재해로 숱한 동물이 피해를 입은 뒤에야 겨우 뗀 첫발이지만 이제라도 재난 발생 시 동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건 다행이다. 그러나 매뉴얼은 최소한의 조치일 뿐, 동물이 실제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으려면 대피를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를 개선해야한다. 


논밭과 같이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개를 키우는 관행, 급박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풀 수 없도록 단단히 묶어둔 목줄, 사람에게 경계를 품게 하는 고립된 환경, 무엇보다 인간의 위협 앞에서는 동물의 목숨을 후순위에 두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 이런 것들이 사라지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숱한 절망을 목격할 수 밖에 없다.


온땅을 집어삼킬 것 같이 기승을 부리던 산불이 마무리됐지만 재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상을 입고 구조된 동물은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디며 일부는 생사의 기로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다행히 산불을 피하고 운좋게 어디도 다치지 않은 동물을 기다리는 세상은 여전히 좁고 답답하고 지루할 것이다. 재난을 피한 뒤에도 불행은 피할 수 없는 동물의 일생은 우리가 살펴야할 또 하나의 숙제다. 


산불이 지나간 곳곳에 이제 봄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무너진 잔해를 헤치고 돌아다니다 매캐한 탄내 속에서 설핏 스치는 꽃향기를 맡으며 소망해본다. 이제 시작하는 봄날과 같이 이들의 삶에도 봄 같은 시간이 꼭 찾아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