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조류인플루엔자(AI)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이제는 AI가 토착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내 AI 발생과 전파 원인이 야생조류라고 지목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동물자유연대뿐 아니라 많은 동물·환경단체 및 조류 전문가들은 정부가 AI 원인으로 야생조류를 탓하는 것의 위험성을 제기해왔습니다. 야생조류를 AI 원인으로 몰아가는 것의 문제는 정부가 세우는 방역정책에서 야생조류에 대한 방역에 대부분의 비중이 실리게 하고, 많은 예산과 인력 투입 또한 야생조류 방역에만 쏠리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철새와 공생하는 방법을 찾기보다 철새 먹이주기 중단이나 항공방재라는 무모한 정책 시행으로 방역 및 생태계에 혼란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야생조류에 초점을 맞춘 방역정책은 축산구조 상 내재된 본질적인 문제를 간과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다시 재고되어야 합니다.
최근 환경부는 지난 11월 7일 김제 종오리 농가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와 관련해 해당 지역 농가 주변에 살고 있는 야생조류를 조사한 결과 AI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관련기사: 김제AI발생, 야생조류 탓 아니다)
<2014. 11. 24 환경부 보도자료 첨부>
조사를 시행한 국립환경과학원은 인근 철새 도래지에서 저병원성 AI가 검출되었지만, 농장 주변에서는 고병원성 AI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야생조류가 가금농장으로 AI바이러스를 ‘직접’ 전파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철새에 대한 방역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최근 유럽에서도 잇따라 AI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 연속적으로 발생하면서 동물 질병의 확산 방지와 근절을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인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는 AI가 발생한 농가가 네덜란드에서 가장 높은 사육밀도를 가지고 있어 질병의 발생과 감염에 매우 취약하다며 가금농장의 ''밀집사육''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세계농장동물보호단체인 CIWF에 소속된 과학자들 또한 동물이 밀집 사육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결국 동물이 질병에 감염되기 쉬운 상태로 만들고, 먼지가 많고 폐쇄된 농장이 바이러스가 변이하고 전파하는 최적의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야생조류로부터 AI 바이러스가 옮겨졌다 하더라도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가금류들은 바이러스를 이겨낼 면역력이 부족하고, 소량의 바이러스가 사육 시설 내에서 급속도로 변이, 증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 주범이 철새냐 아니냐를 논하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바이러스에 취약한 구조라면 현재의 축산 방법이 지속가능한가에 중점을 두고, 적극적으로 개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경제적 논리에 따라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하는 축산시스템이 옹호되는 관행이 계속되는 한, 동물복지를 고려하는 축산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각국 보건 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까지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변이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치사율이 낮은 바이러스라 할지라도 언제 어떻게 변하고 확산될 지 모르는 게 바이러스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그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가축전염병이 연속해서 발생하고, 동물뿐 아니라 환경과 사람에게 심각한 피해를 미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지만, 해결책 마련을 위한 논의과정에서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의식은 부족해보입니다. 이제 그 모든 폐해의 근본적인 원인이 동물의 고통을 무시한 결과라는 점을 하루빨리 인식하고, 해결방안 마련에 주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