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환 (진주산업대 동물소재공학과 교수-동물생명산업 지역협력연구센터)
돼지는 도축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느냐에 따라 고기 맛이 달라진다.
1990년대 초 일이다. 한 학술행사장에서 ‘동물 복지’ 이야기를 꺼냈더니, 무슨 황당한 소리냐며 모두들 쳐다보았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학계에서조차 동물 복지는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동물 산업에 동물 복지를 적용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돼지고기는 한국인들이 섭취하는 육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품질 관리와 안전성 확보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간 돼지 관리는 매우 허술했다. 단순히 관리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돼지의 행동과 습성을 무시한 채 집약화-산업화 시스템으로 관리해 왔다. 그 결과 생산성은 다소 나아졌지만, 돼지에게는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스트레스와 질병이 늘어고, 일부 고기의 품질에서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돼지우리는 돼지가 생명을 유지하고 생산 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사람에게는 소중한 일터이기도 하다. 돼지 복지는 바로 그 우리에서,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 즉 배설물을 치우던 관리자가 악취 유발 가스에 노출되어 고통을 받자, 그같은 환경에서 24시간 생활하는 돼지의 처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
돼지는 돼지고기로 바뀌기 직전에 보통 110kg 정도의 체중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처럼 뚱뚱한 돼지를 일부 양돈 생산자나 운송업자는 마치 화물처럼 대한다. 그들의 핑계는 그럴듯하다. 관리 관행이 그렇고, 시간이 촉박해 돼지를 조심스럽게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돼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필자는 2000년부터 돼지가 도축 전에 어떤 ‘대접’을 받고, 그 대접에 따라 행동과 육질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조사 연구해 왔다. 그 결과, 돼지는 주어진 생활 환경에 따라 혈액 중 스트레스 관련 효소의 농도가 심한 차이를 보였다. 또 PSE(창백하고, 무르고, 물기가 흥건한 고기)라고 불리는 이상육(異常肉) 발생에도 큰 차이가 나타났다. 한마디로 동물 복지가 육질과 직접 관련이 있었다.
기왕이면 더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렇게 하려면 돼지를 출하할 때 부드럽게 대하고, 자라는 동안 욕구 불만 요인을 제거해 주어야 한다. 낯선 돼지와 한 우리에 넣는 것을 금하고, 돼지의 행동과 습성에 근거해 상대해주어야 한다. 또한, 전기봉 사용을 금하고, 도축하기 전에 충분히 쉬게 해주어야 한다.
돼지는 섬세한 동물이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쁨과 공포감을 맛보며,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도 잘 떠올린다. 그리고 호기심이 어린아이 못지 않다. 이같이 예민한 동물에게 심리적-신체적으로 편안함을 제공하려면 더 나은 생활 환경을 조성하고, 사람과의 교감을 확대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13년부터 임신한 돼지를 좁은 우리(60cm×2m 이하)에서 사육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했다. 양돈 시스템은 전세계가 비슷하기 때문에 이 동물 복지 관련 법령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동물 복지에 대한 관심은 차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이다.
* 올려진 글의 내용은 동물자유연대의 공식적인 견해와 관계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