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공주 폐마목장에 마지막 남은 말 4마리를 이동시키며 현장에서 죽어간 말의 추모제를 진행했습니다.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을 말들에게 부족하나마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며, 당일 함께 낭독한 추모사를 공유합니다.
[추모사] 공주시 폐마목장을 폐쇄하며, 이곳에서 죽어간 말들에게 전하는 글
사건 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너희가 생에 마지막으로 발을 디뎠을 이곳에서, 너희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풍경과 너희가 마지막으로 맡았을 공기를 똑같이 보고 느끼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한참을 고민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고 배웠던 것 같은데, 살아보니 세상은 교과서와는 달랐다. 탄생 그 자체로 축복을 받는 생명이 있는 반면, 어떠한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생명도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존재하게된 이유와 관계없이, 세상에 발디딘 생명은 날 때부터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며 생을 견뎌간다. 너희 역시 그랬다.
인간은 경제적 가치를 위해 너희를 만들어내고, 열심히 이용했다. 그러나 인간을 등에 태우고 죽을 힘을 다해 달리거나, 그러다가 넘어져 생사가 위태로워졌을 때에도 너희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영문도 모르고 이 폐마목장에 버려져 눈을 감던 그 순간까지도 인간을 그리워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수많은 말이 숨을 거두었고 누군가는 겨우 살아남은 이곳을 마주하며, 우리 역시 절망과 후회로 고통스러웠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나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까, 의미없어보이는 질문을 던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좌절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우리 앞에는 그 참혹한 현장에 내동댕이쳐진 뒤에도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텨온 생명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들을 지키고자 했다. 지난 40여 일 간 아주 많은 이들이 이 공간을 변화시켰고, 희망을 만들어냈다. 오물로 가득찼던 땅에는 보송한 톱밥과 깨끗한 건초가 깔렸고, 쓸모없는 퇴역마로 뭉뚱그려졌던 말들은 각자의 이름을 되찾았다. 다시는 폐마목장 같은 곳으로 끌려올 일 없도록 평생을 돌봐줄 입양처도 구했다.
40여 일 간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쏟아온 노력이 너희의 억울한 죽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제 이 공간을 정리하며, 그 다음을 준비하려 한다. 너희가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남기고자했던 이야기를 각자의 자리에서 풀어가며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모든 길을 걸어가는 동안 너희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차디찬 공포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눈 감았을 너희에게 이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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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가. 인간만의 세상에서 고생많았어.
이젠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만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에서
평안과 행복을 찾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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