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도? 개라도!
이유 있는 항변
남양주 반려동물복지 센터에 갔다. 동물자유연대에서 구조한 동물들이 알콩달콩 모여 사는 곳이다. 물론, 정 많은 새 가족을 맞이할 희망을 가지고서.
대형견사에는 유독 내 마음을 훔친 메리와 복남이가 있는데, 공교롭게도 둘 다 검은 진돗개 혼혈들이고, 삽과 망치로 죽임당할 뻔했던 경험을 한 녀석들이다.
늘 수줍은 아가씨 메리는 공사 현장에 묶여 살던 중 삽으로 내리 찍히는 학대를 당한 후 구조됐다. 한쪽 눈이 함몰됐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에 대한 경계가 있다. 반면, “내 사랑이 되어 주오”하며 사람만 보면 끌어안고 달려드는 복남이는 유치원 옆 노인정에서 살던 중 담벼락에 매달려진 채 망치로 머리를 죽을 만큼 맞다가 아이들 비명소리에 놀란 선생님이 신고해 구조됐다. 둘 다 채 한 살도 안 된 6개월령 즈음의 어린 나이에 잡아먹힐 뻔했다. 남양주에는 이런 힘든 경험을 당한 큰 녀석들이 많다. 이 개들은 선택받은 개들일 뿐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에 있는 중대형 개들이 하루를 무사히 넘김에 감사하는 생활을, 아니 어쩌면 단 하루를 더 사는 것이 재앙일 수 있는 환경에 처한 개들이 많다.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다. 서울 외곽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눈을 감고 다닐 수도 없고 말이다.
‘개를 먹지 맙시다. 개를 살려주세요! 개 식용을 금지합시다!’
해마다 복날이 되면 동물단체들은 장외로 나가서 캠페인을 한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어쩌다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에 올라가면 댓글들이 주르륵 붙는다.
‘개빠’ ‘왜 개만? 소, 돼지, 닭은?’ ‘저러고 캠페인 끝나면 덥다고 치맥하러 간다면서!?’ ‘캠페인 끝나고 삼겹살에 소주 회식?’ 등등.
개를 그만 먹자는 호소가 개만 특별하게 생각하는 감정에 치우친 행위라고 비난받는 것도 이골이 났다. 하지만 그들 눈에 그렇게 보였으면 우리의 캠페인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겠지, 골몰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저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저들이 우리와 한마음이 될 수 있을까?
농장동물 사육 실태 조사를 계획했던 것처럼 일단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현장 실태와 도살장 조사를 하기로 했다. 그러면 그 안에서 또 방안들이 나오리라.
개농장 및 도살장 조사는 2005년부터 2008년 사이에 하게 됐는데, 때마침 농장동물 도축장 조사 시기와 맞물리게 됐다. 양측을 동시에 조사해보니 농장동물과 비교해볼 때 개를 죽이는 것이 얼마나 더 폭력적인 것인지(목매달아 죽인다거나 때려죽인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열린 귀를 가지고 진지하게 논의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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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현장들이 참혹해 애써 머리에 남겨두는 것도 피하고 싶었는데, 계속 잊혀지지 않으며 가슴을 저리게 하는 현장이 있었다. 모란시장에서 업자들 간에 개들을 거래하는 현장을 보게 됐다. 모란시장 공영주차장 옆, 개발 사업으로 지금은 철거된 계류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개장에 십수 마리의 누렁이들이 있다. 매수인이 한 마리씩 가리킬 때마다 매도인이 손잡이가 긴 집게로 개 목을 조이며 끌어냈다. 누렁이들은 서로 안 잡히려고 개장 안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니는데, 보기에도 참 애처로운 것이, 자신들이 여럿이 뭉쳐 다니면서 서로 의지하는 것인지, 사람에게 선택당하지 않으려고 서로 자신을 감추려는 행위인지, 업자가 개를 선택하기 위해 개장을 휘젓고 다니며 살피는데도 개들은 흩어지지 않고 무리가 함께 움직였다. 고개는 떨구었고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찼다.
그러던 중 업자가 안쪽에서 긴 집게로 한 녀석의 목을 잡아채 끌고 오는데, 개는 두 눈을 꼭 감고서 있는 힘을 다해 두 발로 집게를 붙잡으며 끌려 나왔다. 마치 추락 직전에 사력을 다해 로프 줄을 붙잡고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형상 같았다. 자신을 죽이러 가는 집게이건만 그것을 꼭 부여잡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나는 동물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에, 신체적 고통을 넘어 심리적 공포의 감각을 고도로 표출하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폭력에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소, 돼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이기에 유난히 개만 더 특별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종(種)차별이거나 그 역시 감정적인 주장이라고 할 것을 잘 안다.
죽임을 당하는 데 있어 고통의 무게가 더하고 덜하고를 계량할 수는 없다. 모든 존재는 스스로 준비되지 않은 때에, 원치 않은 방식으로 죽임당하는 순간 공포와 고통을 느낄 것이다. 때문에 우리가 소, 돼지, 닭이 죽임당할 때 느낄 고통과 개가 죽임당할 때 느끼는 고통의 차이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더구나 나는, 감정적으로라도 그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도 둘 수 없을 만큼 이미 수많은 동물들의 열악한 사육환경과 그들을 향한 감정이입, 도축 현장 목격 등을 경험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동물과 달리 개를 다루고 죽이는 방식에는 분명 차이가 존재한다고 감히 결론 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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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도살장과 경매장에는 상처 입은 개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서열 관계 본능이 있는 개의 속성상 낯선 무리와 섞이면서 서로 싸우기 때문이다. 개를 옮기거나 다루는 과정에서 개들의 공격성을 제압하기 위하여 밧줄로 목을 강하게 조이거나 집게를 이용하는 등 가혹 행위를 한다. 개들을 운송할 때에는 좁은 철망에 여러 마리를 몰아넣어 몸을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운송 중 개들끼리 싸우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도 한다. 이렇듯 공격성이 있는 동물일수록 다루는 과정에서 폭압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이런 행위들은 이익과도 연관이 있다. 공격적인 동물을 인도적으로 관리하려면 인력과 시간, 장비 등의 비용이 발생하여 이는 곧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고, 축산업이 추구하는 저비용, 고효율의 원칙은 동물의 인도적인 관리를 더욱 어렵게 한다. 이것은 곧 개 식용화 산업이 잔혹성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도살의 법제화가 개에게 인도적인 대우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농장동물 도축장마저 폐쇄적이어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나는지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어렵다. 그 안에서 생기는 문제점의 일부는 이미 앞서 말한 바 있다. 법이 있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 기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문제점을 지적해 행정지도와 처벌 등으로 관리해야지 근본적인 법 무용론을 전개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도 식용으로 하기 위해서는 법으로 정하고 그를 잘 준수토록 하면 될 것이라는 주장 자체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소, 돼지, 닭 등의 농장동물은 소비자의 자각과 제도적인 관리로 보완할 여지가 있는 반면, 개의 종 특성적인 문제는 두고두고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지속적인 문제가 야기될 우려가 높은 것에 대해서는 논의와 합의를 거쳐 단절토록 하는 것 또한 사회 규범 아닌가?
가축으로 일반화돼 있는 소, 돼지, 닭 등과 개는 죽이고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잔인성에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여타 다른 가축과 개에 차이를 두고 그것을 강조하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좀 더 특별한 연민으로 인해 관심의 차이가 생긴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윤리적 고민은 농장동물복지 캠페인과 정책 개선으로 이어갔고, 개는 합법화되지 않은 도살이라는 점에서 합법화의 위험성과 그 단절이라는 전략으로 접근하며 개도살 금지 캠페인을 전개해 나갔다. - 아주 상식적인 연민으로(조희경 저) 중에서-
임나혜숙 2015-07-13 11:31 | 삭제
오늘 초복이라고 직원들 점심 때....
괴롭네요
더 열심히 노력해야 겠습니다
이경숙 2015-07-13 12:45 | 삭제
네티즌들 댓글에는
복날을 차라리 없애자라는 말까지 나오더군요 ㅠㅠ
매년 벌어지는 이 힘든 상황들
얼른 끝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