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삼총사>
매서운 바람이 불던 지난 1월 말, 도그온 캠페인 시범대상 지역에서 활동가들은 한 야채저장 창고에 있던 백구 삼총사를 만났습니다. 한 마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고, 두 마리는 자기 몸길이와 비슷한 쇠사슬에 묶여 있었죠. 가까이가자 묶여있지 않은 백구가 큰소리로 짖으며 경계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보이는 당연한 반응이긴 했지만, 풀려있는 개의 저돌적인 모습에 소심한 활동가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했었죠. ^^;
사진으로 보시다시피 창고 옆 넓은 벌판에 달랑 집만 놓인 채 묶여 있었고, 그릇에는 밥도 물도 놓여있지 않았습니다. 집 하나는 빨간 고무대야를 땅에 뒤집어엎어 구멍을 뚫어놓은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집 하나는 바람에 날아간 것인지 너무 멀리 있어 짧은 줄 탓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창고 옆에 사료포대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개를 키우는데 아주 무지한 주인은 아닌 것으로 보여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짧은 줄에 묶여 있던 백구(2)에겐 고무대야를 엎어놓은 집과 텅빈 그릇뿐이었다.
백구(3)에게 집이 있었지만 바람에 날아간건지 짧은 줄로 인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추운 날이었다.>
“계세요?”
창고 안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문을 두드렸습니다. 안을 보니 4-5명의 아주머니와 아저씨 한분이 바쁘게 양파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웬 젊은 청년들이 여기까지 찾아왔나 싶은 표정으로 한 아주머니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밖에 있는 개들 집을 보완해주러 왔어요.”
아주머니1. “공짜로 개집을 해준다고?”
“네, 밖에 있는 개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러 온 거에요.”
아주머니2. “아니, 사람도 아니고 개들을 도와준다고? 세상에...”
아주머니2. “아니, 사람도 아니고 개들을 도와준다고? 세상에...”
믿기지 않는다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시던 아주머니께 활동가들이 명함을 드리며 동물보호단체에서 나왔다고 소개했습니다. 아무래도 동물보호단체란 존재조차 모르던 분들께는 아무런 조건 없이 동물을 돕겠다는 사람을 본 자체가 신선한 충격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자주 오지 않고, 평소 개들을 돌보는 일은 일하시는 아저씨 한분이 도맡아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주인이 없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기에, 일단은 개들을 돌보는 아저씨께 추운 겨울에도 동물들이 물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을 드렸습니다. 생각보다 호의적으로 설명을 듣던 아저씨는 날씨 때문에 수도가 언 바람에 물이 안 나와서 줄 수 없다고 하더군요. 활동가들은 일단 준비해간 물을 주고 임시로 볏짚도 넣어준 후, 개집 보완에 대해 주인에게 말씀을 전해달란 부탁을 한 후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간 곳에는 아주 작지만 소중한 변화가 보였습니다.
사진의 하얀 통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개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이 한가득 담긴 물통입니다. 첫 방문 때 얘기를 들은 아저씨께서 근처에 물이 나오는 곳까지 찾아가 매일 물을 담아다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날도 주인은 없었지만, 도움을 줘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날부터 3번의 방문을 통해 활동가들은 개집 놓아주고 보완해주기, 식기 놓아주기, 구충제 투여를 실시하고, 마지막으로 짧은 목줄을 바꿔주는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개들이 지내는 곳이 넓은 공터였기에 충분히 긴 목줄로 바꿔줘도 무리가 없다고 판단됐습니다. 혹시 몰라 다른 문제가 생기면 그때 원래대로 해놓겠다고 아저씨를 안심 시킨 후, 드디어 1미터 쇠줄을 더 가볍고 튼튼한 3미터짜리 와이어 줄로 교체했습니다. 오래되어 삭아버린 목줄도 함께 바꿨습니다. 고작 조금 활동반경이 넓어졌을 뿐인데 신나서 서로 방방 뛰며 노는 모습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개선해준 사항들이 잘 유지되는지, 관리에 어려움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며칠 뒤 다시 방문하니 다행히 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을 돌보는 아저씨 말씀으론, 한쪽에 놓아두고 왔던 쇠사슬과 낡은 목줄은 주인이 치워버렸고, 새줄을 묶어놓았던 부분이 허술했었는지 주인이 더 튼튼하게 고쳐놓았다고 합니다. 사실 5번의 방문 동안 진짜 주인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는데, 자신의 개에게 간섭한다는 오해를 하지 않은 것 같아서 감사하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결 부분이 허술했는지 주인이 튼튼한 철사로 바꿔 놓았다.>
활동가들의 마음을 알았는지 경계가 심하던 백구도 180도 변했습니다. 차가 도착하면 맹렬히 짖으며 쫓아 나왔던 백구가 이제는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반기면서 덩치도 큰 녀석이 쓰다듬어주면 배를 뒤집고는 애교를 떱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배웅까지 해줍니다. 진심을 다해 다가가니 사람도 개도 변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구의 변화, 경계가 심하던 녀석이 이제 먼저 와서 애교를 피우고, 갈 때는 배웅까지 해준다.>
심각한 학대사건이나 당장 죽을 것 같이 방치된 동물들의 사건만 해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모두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인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무지와 잘못된 인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동물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생명에 대한 작은 배려들이 우리 사회에 확산될 때, 심각하게 고통 받는 동물들의 수도 줄어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방치된 동물을 돕기 위한 도그온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시민 인식 개선과 참여를 목표로 하는 이 캠페인은 ‘방치도 학대’라는 동물보호법 개정을 위한 활동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을 보시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단 한가지만이라도 개선해줄 수 있도록 주인을 설득해보세요.
때로 우리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키고, 밖에 사는 동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민수홍 2015-03-18 22:17 | 삭제
"아주 작지만 소중한," 진짜 아름답고 근사한 변화!!!
양은경 2015-03-19 20:47 | 삭제
개식용만큼이나 진저리 쳐 온 방치라는 이름의 학대, 재 작년엔가 시도된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펼치시는군요. 대환영입니다~~~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이형주 2015-03-20 14:58 | 삭제
걷고, 뛰고, 탐색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개에게 허락된 세상 1미터, 볼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고작 2미터 길어진 삶에 좋아하는 개들을 보니 제가 다 미안하네요.
전희진 2015-03-21 15:04 | 삭제
시골에서 열악한 환경의 갇혀있는 개를 본 지인분이 너무 힘들어하셔서 '방치된 동물 돕기 팁'을 복사해서 보여드렸어요. 적어도 무지에 의해 고통받는 동물은 도울수 있을것 같아요!
조평옥 2015-03-25 11:50 | 삭제
작은 일인 것 같지만 엄청 큰 일이라 여깁니다.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