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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가 꿈꾸는 '동물에게 더 나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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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사는 재미 (웰빙粥 이야기...)
- 이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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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9.13
나는 粥보다는 밥을
떡보다는 빵을 더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는 粥을 거의 끓이지 않는 편이다...
간혹 아픈 사람이 있으면
작은 전복 몇 마리 사서 잘게 썰어
참기름에 불린 쌀이랑 같이 넣어 다글다글 볶다가
푹 끓여서 주는 게 고작이었다...
가을이 익는만큼
누렁호박도 포실포실 여물고
노오란 속 또한 달디달게 익어
집집마다
달콤한 호박죽을
고소한 호박전을
끓이고 부쳐서 나눠들 먹지만
그 동안 난 주로 얻어만 먹었지
내 손으로는 거의 하질 않았다...
그런데
얼마전
어떤 분이 단호박粥을 끓여서 갖다 주셨는데
남편도, 일터에 있는 식구들도
너무나 맛나게 잘 먹기에
\'나도 한 번 粥을 끓여 볼까나...\'그랬다...
드디어
나만의 粥끓이기에 들어갔다...
야채 가게에서
단호박 두 통을 사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 뉴스나 연속극을 보면서
단단한 껍질은 벗기고
속살은 얇게, 나박나박 썰었는데
단호박을 손질하는 동안
집에 있는 현미찹쌀을 비롯한 25가지 잡곡과
강낭콩, 속청, 완두콩, 밤콩 등 온갖 종류의 콩을 불린다...
내가 콩을 좋아하는지라 엄청 많이 넣는다...
다른 집 粥은 주로 찹쌀을 갈아서 하던데
나는 목구멍에 술술 넘기는 것보다는
아작아작 씹어 먹는 게 더 좋기에
잡곡들도 안갈고 그냥 통째로 넣어서 끓인다...
호박보다는 콩이나 다른 잡곡이 훨씬 더 많아
색깔은 예쁜 노란색이 아니고 거의 카키색인데
많은 곡식 알맹이들이 알알이 박혀 있어
보기만 봐도 영양이 듬뿍 든 것같아서
내가 그냥 이름 붙이기를 \'웰빙粥\'이라 한다...
커다란 솥에 준비된 재료를 다 넣고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며 끓이는데
나지막한 불이지만
게으름을 조금이라도 부리면
금세 눌어붙어서 탄내라도 배일까 봐
팔이 많이 아프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을 젓고 젓고 또 젓는다...
나중엔
풀떡풀떡 뛰어오르는 죽물이
손등에, 팔꿈치에 튀어
물집이 부풀어오르는 화상을 입기도 한다...
너무 뜨거워
찬물을 틀고, 얼음을 갖다대고 하지만
새까맣게 피부가 변색이 되는
이런 영광의 상처는 두 군데나 된다...
물론
호박을 쪄서 넣거나
압력밥솥에 다 넣고 간편하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렇게 힘들게 하면 그 정성으로
좀더 맛있고 영양가 많은 粥이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이렇게 어렵게
그러나 즐겁게
난 요즘
이 \'웰빙粥\'을 자주 끓이고 있다...
안그래도 평소에 손크기로 유명한 나이지만
이 \'웰빙粥\'을
한 번 끓이자면
우리 집에 있는 제일 큰 솥을 꼭 쓰는데
어떤 땐 솥 두 개에다 끓이기도 한다...
엄마한테, 언니한테 한 통씩 보내기도 하고
일터 식구들이랑 친구들이랑 많이도 나눠 먹는다...
앞으로도 계속 잘 하라고 격려차 하는 말인지 몰라도
모두들 맛있단다...
잘 한다 하면 어깨춤과 엉덩춤이 절로나
자꾸자꾸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라...
내가 먹기보다는
다른 사람 먹이는 재미에 푹 빠져
오늘도
단호박이나 누렁호박을
몇 통 사러갈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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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성 2004.09.15
저는 콩이 너무 싫어요,어릴때도 지금도.아직 앤가봐..
박경화 2004.09.14
아... 저 호박전 너무 좋아요!!!! 글구 호박죽 진짜 맛있게 끊이는 집은... 죽이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어느 반 어머님께서 전을 보내주셔서... 호박전 3개 먹었는데... -_- 다른 사람들보다 회복속도가 느린지... 속이 안 좋군요... ㅜ.ㅜ
김종필 2004.09.13
...것과...세계로 읽으니 단맛 나네요~~^^~~멋있슴다~~~~
이경미 2004.09.13
요샌 여기저기에다가 웰빙 갖다 붙이잖아요..심지어 웰빙 오예스도 나왔다는..-_-; 슬쩍 크기 줄이고 가격 올리고 중량 줄이면서..칼슘인지 키토산인지 집어넣어서 \'웰빙 오예스\'로 변신했다고 내놓는거 보니 웃기지도 않아요..
홍현신 2004.09.13
저도요~~ 팥도 넣어주세요.. 이렇게 느리고 밋밋한 맛.. 또 그걸 함께 나누는 큰손 경숙님..그 행복함이 좋아요.. 자극적인 맛이 부드러운 맛을 비웃는 요즘.. 힘센 생명이 약한 생명을 조롱하는 .... 이런 세상에 사는 우리가 습관처럼 익숙해져야할.. 함께 잘살기.. 웰빙~~ 근데 요즘 웰빙을 지혼자 잘먹고 잘사는 건지 알고 깝작대는 인간들이 있질 않나... 고걸로 또 장사해보려는 것들이 있질 않나.. 고런 인간들 보면... 읔!
이경미 2004.09.13
저..저도 한 그릇만..T_T...호박죽하고 호박전 먹고싶네요..벌써 가을인가...
이기순 2004.09.13
저도 호박죽 엄청 좋아하는데... 콩도 좋아하고... 읽다보니 입에 침이 고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