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HOME ESSAY
할머니 ''솜이''도, 콧대 높은 ''리카''도 즐거운 개 재미난 산책
산책은 가족 없는 동물들의 심리치료제
글. 윤정임 국장
북한강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의 당당이(왼쪽)와 복돌이.
잔뜩 겁 먹었던 표정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동물보호소는 항상 포화 상태다. 입양되는 동물보다 구조돼 들어오는 동물이 더 많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에 개체수가 늘어나면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높아진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싸움으로 이어진다. 매일 같은 공간에서 변화가 없는 일상을 보내는 동물들의 무료함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다.
동물보호소에 있는 대부분 동물은 개다. 개는 사람과 함께 살도록 진화했다. 야생에서 독립성은 없어지고 사람에 의존해 살아간다. 개는 사람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가족이 있는 개들은 언제라도 사람을 볼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산책도 자주 하고 주말이면 공원과 애견 펜션에 가는 등 스트레스와 무료함을 풀 기회가 많다.
가족이 없는 동물보호소 개들은 사람과 단절돼 생활한다. 청소, 급식 시간에 짧게 만나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사람을 보면 너도나도 난리가 난다. 맹렬히 짖고 부딪히고 싸우며 조금이라도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한다. 흡사 아수라장 같다. 보호소 직원도 손님도 모두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영국 도그 트러스트(Dog Trust) 동물 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산책을 시키고 있다.
이 곳 개들은 하루 네 번 산책을 한다고 한다.
2012년과 2018년 영국과 캐나다의 동물보호소를 방문했다. 개들이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았다. 영국 동물보호소 ‘도그 트러스트’(Dog Trust)의 개들은 하루 네 번 산책을 한다고 한다. 그 중 세 번은 줄을 하고 사람과 나란히 걷는다. 한번은 울타리가 쳐진 운동장에 풀어 자유롭게 뛰어 놀도록 한다. 동물보호소 부지가 넓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운동장도 잔디, 모래, 콘크리트 등 바닥 재료를 다양하게 구성하여 개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개들은 한 개 구역에 1마리씩, 단독으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밀집도가 낮고 보통 50㎡에 1~2마리의 개가 여유롭게 생활한다. 사람이 들어가면 수십 마리가 달려드는 한국 동물보호소와 다르다. 산책을 시키기 위해 줄을 메고 데리고 나올 때도 수월하다. 사람을 자주 만나니 자연스럽게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우리나라 동물보호소 개들은 한 달에 한 번 산책도 어렵다. 산책을 시킬 수 있는 인력이 없고, 동물보호소 부지가 좁아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개들이 뛰어 놀 운동장을 가지고 있는 동물보호소는 드물다. 밀집도가 높고 1마리가 산책을 나가면 100여 마리가 다 알 수 있는 오픈 구조라 일시에 난리가 나는 상황이다. 보호소 상주 직원은 밥 주고 변 치우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산책은 자원봉사자 몫인데 오랜 시간 자원봉사를 와서 동물보호소 내부 상황과 보호중인 개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는 봉사자를 제외하면 산책을 시킬 수 없다. 수십 마리를 뚫고 산책 시킬 개를 데리고 나온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흥분한 개들이 싸우거나 열린 문틈으로 나가기도 한다. 자원봉사자가 동물들을 컨트롤 할 수 없으니 청소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산책이다.
발 맞추어 걷다 보면 사람도 힐링 되는 개 재미난 산책 ‘개미산’.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는 동물들의 크기, 성격에 맞추어 구획이 나눠져 있다. 하지만 밀집도가 높아 산책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센터 주변으로 산책할 수 있는 안전한 길도 없다. 보호 동물은 계속 늘고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던 때, 센터에서 차로 5분 거리인 북한강으로 야외 산책을 나갔다. 북한강의 멋진 전경과 나무와 풀이 많은 산책로는 개들에게 안성맞춤이었다.
매주 금요일 오후, 자원봉사자들을 모아 북한강 야외 산책을 진행했다. 동물 돌봄이 익숙하지 않은 봉사자도 많기 때문에 동물 훈련 담당이 안전을 위해 동행한다. 한 번에 10마리 정도라 200마리 넘는 개들에게 순번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한참 걸리지만 새롭고 신선한 한 번의 경험이 앞으로 살아갈 수 많은 날들의 에너지가 되지 않겠는가.
보호소 안에서는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던 ‘리카’는 밖으로 나가면 완전 겁쟁이가 된다.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되던 나이 든 ‘솜이’는 자원봉사자가 힘들어 할 정도로 빠르다. ‘동안이’는 풀 냄새 맡느라 제자리만 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관심을 가지는 낭만주의견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걷고 뛰면서 기분 전환을 하는 ‘개 재미난’ 산책 프로젝트 ‘개미산’. 자원봉사자와 동물이 1:1로 짝을 맞추어 걷는 ‘개미산’을 시작하고 일곱 번의 계절이 지났다. 앞으로 40번 쯤의 계절이 더 지나면 혐오시설로 낙인 찍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동물보호소는 우리 가까이 와 있겠지. 외로운 동물보호소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입양되는 동물들도 늘어나겠지.
미래의 키워드는 ‘복지’. 그 중 동물 복지는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다. 우리는 동물복지 영역 중 ‘동물보호소’의 복지 향상을 위해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개 재미난 산책, 개미산을 통해서.
평생 작은 뜬 장에서 살다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를 브로, 콜리, 양파, 두부.
구조된 브로, 콜리, 양파, 두부가 북한강으로 산책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