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오늘도 ok

온 이야기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오늘도 ok

  • 반려동물복지센터
  • /
  • 2018.02.19 09:46
  • /
  • 1644
  • /
  • 51


ANIMAL  HOME  ESSAY

열심히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오늘도 OK

글. 윤정임 국장 





▷안구 적출 수술을 받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샘이.
다행히 ''부스럭'' 소리만 나도 총알 같이 달려온다. 장난감 물고 삑삑거리며 잘도 논다. 




동물들도 1차 병원으로 불리는 작은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질병이나 수술은 사람처럼 2차 병원으로 간다. 반려동물복지센터 동물 중 척추질환을 앓는 아이가 있어 2차 병원을 방문했을 때였다. 아주머니 한 분이 얼마나 우셨는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작은 개를 안고 계셨다.
 
‘아이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얼마나 힘들까….’
 
잠시 후, 자리에 돌아온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아이가 많이 아프냐 물으니 또 눈물이 맺히신다. 반려견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대전에서 올라왔다는 아주머니는 어떻게든 눈을 살려보려고 대학병원에 왔는데 여기서도 안구 적출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고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하셨다. 한쪽 눈이 없는 개는 상상하기도 무섭다고.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인 차이겠지만 안구 적출 수술은 목숨에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기 때문에 회복이 힘든 중증 질환을 안고 대학병원을 찾은 다른 동물보다는 나은 셈이다.
 
아주머니께 휴대폰으로 오랜 기간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살고 있는 ‘켠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 드렸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산책 나가면 다리 들고 영역 표시하느라 즐겁고 장난감 욕심도 많고 물그릇도 잘 찾는다고 아주머니를 위로했다.
 
동물보호소는 안구에 상처를 입거나 질환이 깊은 상태로 구조된 동물이 많아서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 동물들이 꽤 있다.  2015년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한 시추 ‘샘이’는 구조 당시 안구 상태가 최악이었다. 화농성 염증이 가득했던 왼쪽 안구는 이미 시력을 상실했고 오른쪽 안구도 장기간 치료가 필요했다. 안약 종류만 5개였고 하루 5번 이상, 20차례 안약을 넣어야 했다.

발로 눈을 긁거나 얼굴을 바닥에 대고 문지르는 날엔 안구에 상처가 나서 염증이 악화하는 일이 반복됐다. 어쩔 수 없이 긁지 못하도록 넥 카라를 항시 착용시켰다. 넥 카라를 쓰게 되면 활동에 제약이 크다. 개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인 귀 털기와 발 핥기가 힘들어진다.
 
넥 카라, 안약과 한 몸이 되고 2년이 흘렀다. 샘이는 안구를 제외하곤 건강했다. 그러나 입양을 가려면 하루 20번의 안약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장기간 고가의 안약을 사야 하고 안구 상태가 악화하면 적출 수술도 시켜야 하는데 이런 부담을 안고 입양할 가족은 드물기 때문이다.
 



▷2015년 불법 번식장에서 구조 한 샘이. 
번식장 동물들은 아파도, 다쳐도 치료 받지 못한다.
치료비 보다 동물 구입비가 더 싸니까 죽어도 그만이다. 



고민에 잠겼다. 언젠가는 더 이상 안약으로 유지할 수 없어 수술을 시켜야 하는 시기가 오겠지만 지금은 수술해야 하는 오른쪽 안구에 시력이 남아 있다. 답답한 넥 카라도 벗을 수 있고 억지로 넣는 안약과 이별할 수 있지만 암흑 세상에 갇혀버리는 것이다.
 
이대로 유지하는 것과 수술을 하는 것 중 더 좋은 것은 없다. 나쁜 것과 더 나쁜 것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인데 샘이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가, 너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 동안 그래도 어떤 상황을 견딜 수 있겠니?’
 
자연 상태에서 동물은 선택을 하면서 산다. 현재를 살아가는 반려동물은 선택할 수 없다. 태어나는 것도, 어미와 헤어져 다른 곳으로 보내지는 것도, 버려지는 것도, 치료 받는 것도…. 그래서 최대한 신중하게 그들의 상황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대신 선택해 주어야 한다.
 
다행히 동물보호소에서 생활하는 샘이, 버거, 분홍이는 적출 수술 후 앞이 보이지 않지만 밥 시간이면 제일 먼저 달려온다. 부딪히면 싸우기도 한다. 혼자 예쁨 받겠다고 친구들과 경쟁도 하고 낯선 소음에 우렁차게 짖기도 한다. 햇볕 잘 드는 곳에 자리잡고 늘어지게 잠도 잘 잔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힘든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 동물을 바라보는 불편함 가득한 우리의 눈이 아닐까.

 

▷앞이 보이지 않은 상태로 10년을 살다 2017년 별이 된 켠이. 
이사를 해도 물그릇 위치는 하루면 인지하고, 일주일이면 집 구조 파악해 부딪히지 않았다. 






*이 글은 한겨레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