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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다시 업둥신이 내리다

어젯밤에 동네를 돌아다녔답니다.
우리 동네가 워낙 시골같은 환경이라 길냥이아가들이 많아요.
우리집은 언덕 위 맨끝 집이고 저는 워낙에 집에만 짱 박혀 지내는 인간인지라..
터잡고 사는 여기 냥이들만 챙겨줄 뿐이었죠.
의식적으로 언덕아래로 이어지는 길가의 길냥이들, 사이사이 샛길들의 길냥이들...
보고싶지 않았구요.
간간히 동생이나 동생여친을 통해 어느 아이가 새끼를 낳았고
어느 아이는 어느 파이고...뭐 그런 정도만 전해들을 뿐....
그런데 어제 저녁 동생여친이 슈퍼에 가는데(근처에 살거든요)못보던 젖소아이가 지나더래요.
그냥 무심코 넌 어디서 왔니 하고 물었더니 쪼르륵 달려와 안기더랍니다.
그러더니 언덕 맨 아래 슈퍼까지 따라오더래요.
냥이라면 무서워하는 엄마랑 같이 장보러 가는 길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얼른 올라가!하고 언덕위로 쫓아보냈는데...
때에 잔뜩 절어는 있지만 그렇게나 붙임성이 좋더래요.
그 얘기를 전해듣고나니 맘이 짠해서
못보던 애라면 여기 이미 형성된 터잡은 애들에게 힘이 들텐데 싶어...
그래도 왠만큼이야 경계심이 있겠지 설마...하며
밤길을 돌아다녀보았습니다.
동네 구비구비 안가보던 길가마다 담벼락에 앉은 녀석들.
전봇대옆에 숨은 아이.
쓰레기비닐을 뜯는 아이들.
세상에. 제가 모르는 그렇게나 많은 아이들이 그 밤에 먹이를 찾아 다니고 있대요....
여기저기 사료를 흩뿌려두면서 맘이 참 안좋더군요.
얼마나 고단하냐, 목숨이 얼마나 모지냐....

그렇게 젖소아가를 찾아다녔는데 없더라구요.
아무나 그렇게 따르다가, 쫓아다니다가 차라도 치이지않을까.
경계심이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큰 고양이들 사이에서 못보던 아가가 잘 살아갈까.
어미는 있을까, 형제는 있을까...
한편으론 그래 안만나서 다행이다 싶었구요.
그렇게 어젯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 대학로 행사에 가던 중 언덕을 반쯤 내려가고 있을 때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ㅠ.ㅠ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빌라마당 한켠에서 아이들이 우유와 멸치를 주며 이뻐라하고 있더라구요.
애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저께부터 나타난 아이구 어른들이 말하길 엄마고양이는 차옆에서 죽어 누워있었다고 하더랍니다.
차에 치인 건지 아파서 죽은 건지는 모르겠어요....

애들에게 이렇게 생긴 다른 고양이는 없더냐 물어보고, 이렇게저렇게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아마도 이 곳으로 이사온 길냥이모자가 아니었을지 싶어요.
아님 누군가 키우다 내버려둔 걸까요?
너무나 신기한 것은
이 아이가 집고양이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아주아주 순하고 사람을 몹시나 따른다는 사실이랍니다.
길바닥에서 애들이 주는대로 실컷 먹고 제가 안아주니 제 품에서 고개를 옆으로 떨군 채 잠이 들 정도로요.

거짓말처럼 안겨오는 이 아이를 두고 행사시작 시간이 이미 지나는 동안...
간밤부터 이어진 고민을 맹렬하게 다시 하였습니다.
애들에게 어디 안가게 고양이 잘 지켜라 하고 말하고는 집에 다시 돌아와 동생을 설득해보고
죽어도 안된다는 동생의 단언에
일단 가서 너두 좀 보자, 이렇게 순한 애가 길에서 살겠는가 못살겠는가...
고양이 앞까지 와서 다시 실랑이.
화가 난 동생은 도로 들어가고...
도저히 그냥 두고는 걸음이 떨어질 것 같지않아 막무가내로 안아들고 집에 올라와...
동생은 어쩔 거냐며 화를 내며 대문을 열어주지않더군요.
아주 아가도 아니고 3,4개월쯤은 된 아이가 입양이 쉽지않다는 것쯤
동물단체 4년차 회원누나 둔 그간의 짠밥으로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니까요.

닫힌 대문앞에서 어찌나 어이없던지..
동물 문제에 관해선 전 완전 깨갱입니다.
성질 드러운 누나의 카리스마! 이 문제에서 있어서만은 아무 소용없습니다...ㅜ.ㅡ;

암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머리가 아픕니다.
그치만 이런 길냥아가가 어디 있을까요.
순하디순하고 명랑하기가....
너무나 더러워서 흰털이 완전히 때국물에 절어있어서 목욕을 시켰습니다.
목욕도 안시켰다간 동생이 더 난리칠테니 애기 사정이야 어떻든 걍 시켰습니다.ㅜ.ㅜ
그런데요.
얘가 정말 이럴 수가 있습니까?
목욕 잘 하기로 소문난 우리 애들보다도 더더 순하더라 이겁니다.
세상에 귀를 까뒤집고 닦아주는대로 화도 안내고.
털을 말려주는 동안에도 드르렁거리며 좋다고 하더라구요.
아~~ 미치겠다.

암튼 느무 착한 아이입니다.
마야 쥬니어라고나 할까요?
2시간이나 늦게 행사에 도착해서 집에 돌아와니 아이가 조금 설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아마 낮에 꼬마들이 준 우유나 환경 바뀐 탓이려니 생각하고 싶어요.
월요일엔 병원에 다녀와야겠습니다.
큰 아가이니 접종 바로 해도 되겠지요?
제발 젤리, 졸리에 이어 입양복이 있길 기도해봅니다.

암튼 사고쳤습니다...ㅠ.ㅠ
사진 조만간 올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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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이경숙 2004.08.23

몸은 비록 작지만..... 품은 이 세상 다 안을 수 있을만큼 큰 현숙님......사랑합니다.....


양미화 2004.08.22

언니도 참 고민이 많겠네요. 저도 그렇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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