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호랑이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전시·야생동물

호랑이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습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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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2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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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크레인이 지난 12월 18일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왔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원주 드림랜드 동물들의 겨우살이를 살피기 위해 지난 11월 12일 동물원을 방문했습니다. 이 내용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미 보고드렸죠(‘11월 현재 원주 드림랜드 동물원 및 동물원 상태’).11월 24일 동행했던 한겨레 남종영 기자님의 기사가 보도(‘부도 직전 동물원 가보니 굶주린 호랑이가…’)되면서 드림랜드에 있는 호랑이 한 마리가 서울대공원에서 2000년 태어난 크레인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추운 우리 안에 방치돼 있다시피 한 크레인의 사정이 알려지자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재정이 열악해서 먹이 공급에도 문제가 있는데다, 강원도와 토지 임차 계약이 끝나는 2015년 이후에는 계속 운영할 가능성조차 낮은 드림랜드에 두는 대신 크레인이 태어난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데려오자는 의견이 제일 많았습니다. 동물자유연대도 크레인을 비롯해서 건강 상태가 염려되는 유럽 불곰 한 쌍 등 일부 동물을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민영 동물원인 드림랜드가 소유한 동물들의 거취를 임의로 결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 서울대공원, 강원도청 관광정책과, 드림랜드와 크레인의 거취를 논의하던 중 박원순 시장님이 11월 30일 제일 먼저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의견을 밝혀 주셨고, 12월 1일 드림랜드 주주총회에서 크레인과 유럽 불곰 한 쌍을 무상 양도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바로 서울대공원을 방문, 크레인이 생활할 환경을 점검하고 동물복지과, 동물기획과와 크레인 이송에 대한 협의를 마쳤습니다. 이후 동물자유연대의 중재로 서울대공원과 드림랜드는 크레인 이송을 위해 필요한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시베리아 호랑이인 크레인은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Convention on International Trade in Endangered Species of Wild Flora and Fauna] 보호종이라 동물원 간 양도양수를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던 설명과 달리, 이송 협의는 저희도 놀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12월 18일 크레인을 서울대공원으로 데려오기 위해 원주 치악산 드림랜드로 내려갔습니다. 이 날 원주행에는 동물을 위한 행동 전경옥 대표, 크레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작별’의 황윤 감독과 TV 동물농장 팀이 함께했습니다.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에 영구 안착할 수 있게 된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원주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생활환경과 돌봄의 질은 드림랜드보다 낫겠지만, 호랑이가 있어야 할 곳은 ‘또 다른 동물원’이 아니라 자연이니까요. 그렇지만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동물원에서 산 크레인을 대뜸 시베리아 벌판에 풀어줄 수도 없는 일이지요… 치악산의 매서운 추위보다 제 마음을 더 춥게 만들었던 건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 무엇일까 하는 근원적인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크레인의 이송에 대해서도 사실 온 마음으로 반기지 못했습니다. 크레인 목 뒤의 상처를 보기 전까지는요.

 
이송 과정 중에 발견한 피부염

이송을 위해 마취하고 기본적인 건강검진을 하던 중 크레인 목 뒤에서 큰 상처가 발견됐습니다. 서울대공원에서 파견된 수의사가 세균성 혹은 곰팡이성 피부염이고, 확실한 건 배양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꽤 넓은 부위에 깊게 자리잡고 있었는데도 드림랜드 직원들은 처음 보는 거라고 당황하며, 미안해 했습니다.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드림랜드에는 상근 수의사도, 전문 사육사도 없습니다. 그저 관리 인원이 몇 명 있을 뿐입니다. 그나마 그 분들도 제대로 대우받고 있다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드림랜드는 언론이나 동물자유연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항변했지만, 아무리 동물원이라도 동물들을 가둬놓고 때 되면 먹이나 집어넣어 주는 게 ‘관리’는 아닙니다. 전시를 위해 존재하는 동물들이라도 제대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게 동물원의 의무입니다. 이송 당일 아침에도 닭을 다섯 마리나 줬다고, 절대 굶기지 않는다고 억울해 했지만 먹이가 부족한 지방에서는 3,000㎢의 세력 범위를 가지고, 하룻밤에 고기를 23kg까지 먹을 수 있다는 호랑이에게 적절한 급여량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요?

 
마취한 크레인을 이동상자까지 실어 나른 낡은 포대
 
 
내사 입구가 좁아 이동상자를 들여가지 못하고, 크레인을 들어서 나르고 있다

이동상자에 담긴 크레인

우여곡절 끝에 12월 18일 저녁 6시쯤 서울대공원에 도착한 크레인은, 다행히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아직은 우리 안을 계속 오락가락하는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다지만 목 뒤 피부병은 벌써 많이 나았고, 분변검사 등 건강검진을 통해 질병 유무를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아끼지 않을 거라는 서울대공원의 약속도 있었습니다.

 

크레인이 생활하는 서울대공원 맹수사

크레인을 위해 인도적인 결정을 내려주신 박원순 서울시장님, 서울대공원 그리고 드림랜드에 감사드립니다. 동물자유연대는 크레인 이송으로 만족하지 않고 드림랜드에 남아 있는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제일 시급한 건 이미 무상양도 결정이 내려진 유럽 불곰 한 쌍이 옮길 곳을 찾는 일입니다. 쉽지 않은 이 과정에 여러분이 함께해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