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생의 끄트머리에서 구해낸 생명-방치 학대 말 구조 이야기

농장동물

생의 끄트머리에서 구해낸 생명-방치 학대 말 구조 이야기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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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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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과 폭우 속 방치된 말 세 마리 

얼마 전 충남 부여에서 동물 학대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하루에도 몇 건 씩 접수되는 동물 방치 사건이었습니다. 다만 평소보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그 대상이 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제보 내용은 이랬습니다. 얼마 전부터 제보자가 일하는 공장 인근에 말 네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처음부터 말들은 하나같이 마르거나 다리를 절거나 상처를 입는 등 성치 않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들이닥치던 시기에 그늘 한 점 없는 곳에 방치된 말들, 그것도 쇠약한 몸으로 버려진 말들은 버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제보 직후 안타깝게도 한 마리가 목숨을 잃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실태 파악을 위해 도착한 현장에는 서 있는 것 조차 버거워보일 만큼 깡마른 말 한 마리와 다리를 저는 말, 엉덩이 쪽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말, 총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말들이 버려진 곳은 철거가 중단된 축사 터로, 말들이 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철조망, 못 등의 폐자재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물을 끌어올 시설 조차 없어 제보자 분이 매일 물을 길어다 풀숲을 헤치고 들어와 급여하는 형편이었습니다. 올 때부터 건강이 안좋았던 말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매일 험한 길을 뚫고 물과 당근을 싣고 와 말들에게 공급해주신 제보자 덕분이었습니다.  







대체 어쩌다 이 처참한 환경에서 말들이 살게 되었는지,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우선은 그 의문을 뒤로 하고 이들을 살릴 방법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대상은 개, 고양이도 아닌 무게가 수 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말들. 이송 방법부터 소유권 확보, 보호 공간 마련까지 구조의 전 과정이 동물자유연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사실 저 말들 저러고 있다 죽으면 약재나 개사료로 쓰는거야”


구조를 결정한 동물자유연대는 우선 말들의 소유자부터 찾아나섰습니다. 방치된 말들은 돈을 주고 사온 게 아닌, 오히려 손쉬운 처리를 위해 버려진 말들이었기 때문에 소유자가 명확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수소문 끝에 제일 처음 어디에선가 말을 받아온 사람을 찾아 소유권을 이전받았습니다. 단체에 소유권을 넘겨준 이는 “어차피 데려가도 죽을 말들”이라면서, “내가 솔직히 말하는 건데 사실 저런 말들은 죽고 나면 건강원으로 가거나 개사료로 쓰는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발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퇴역마나 더 이상 쓸모가 없는 말들은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이들을 이용해 약재나 사료의 원료로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말들이 어쩌다 이런 곳까지 와서 버려졌는지 그 원인도 짐작됐습니다. 


말들의 건강 상태가 비관적으로 보인다해도 어떻게든 눈앞의 말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동물자유연대는 마사회 말보건원에 협조를 요청해 응급 진료를 진행했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수의사 검진 결과 셋 중 가장 야윈 말의 상태가 가장 심각하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근육이 없어 주사조차 쉽지 않을 만큼 깡마른 말은 지금 당장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태가 안좋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활동가들이 가져간 건초를 쏟아주자 열심히 먹는 모습을 보며 일말의 희망을 품고 제주에 있는 말 보호 시설로 이동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진료를 다녀온지 며칠 지나지 않아 셋 중 상태가 가장 안좋았던 말이 결국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지겹게도 비가 쏟아지던 시기, 충남 부여에도 엄청난 양의 폭우가 내렸고 극심하게 쇠약해진 몸으로 이틀 내리 퍼붓던 장대비를 견디지 못한 듯 했습니다. 이제 며칠만 기다리면 제주로 가는 차에 몸을 싣고 보호 시설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짙은 아쉬움을 쉽게 떨칠 수 없었습니다. 



존재 자체가 살아야 할 이유인 삶을 시작하며 


마침내 제주로 떠나는 날, 다행히도 두 마리 말들은 폭염과 폭우를 견뎌주었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습니다. 말들은 충남 부여에서 제주 보호 시설까지 약 13시간의 이동을 버텨야 했습니다. 이송 담당자로부터 말이 이동하는 도중에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게되면 혈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전해들었습니다. 상처가 있는 말의 경우 어느정도 아문 상처가 차량에 쓸리면서 다시 더 큰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 하고 말들이 제주에 잘 도착하기만을 바라며 한 마리씩 차량에 들여보냈습니다. 

  


오후 5시 쯤 충남 부여에서 출발해 경남 삼천포항에서 밤 11시 30분 배를 타고 새벽 6시 쯤 제주항에 도착했습니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약 한 시간 가량을 더 달린 뒤에야 드디어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긴 이동 시간에 지쳐 주저 앉은 건 아닐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열어본 차량에는 잘 버텨준 말 두 마리가 기특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다만 심한 상처가 있던 말은 걱정대로 차량이 움직이는 동안 상처가 계속 쓸리면서 피를 흘리고 있어 급하게 수의사 출장을 요청했습니다. 


말들이 도착한 곳은 국내 최초 말 보호 시설이었습니다. 착취 일색인 국내 말 산업 아래에서 인간이 정해놓은 쓸모가 사라지면 쉽게 버려지는 말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개인이 직접 나서 마련한 말 보호 공간입니다. 모든 동물 보호 시설이 그렇듯 이곳 역시 구조가 필요한 동물은 끝이 없는데 인력과 재원은 한정돼있어 불가피한 선택이 뒤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동물자유연대가 구조한 두 마리 말은 참 힘들고 고달픈 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그나마 선택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말들은 현재 치료를 받으며 신선한 풀과 깨끗한 물을 먹으며 새로운 터전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설에서 살던 말들과도 조금씩 안면을 트는 중입니다. 이제는 갈증과 굶주림도, 어딘지 모를 곳에 팔려다니는 것도 모두 끝입니다. 쓸모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지 않고, 존재 자체가 그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번에 구조한 말들은 경주마에서 은퇴한 퇴역경주마와 더 이상 사람을 태우지 못하게 된 승용마였습니다. 둘 다 20살 전후의 나이로, 긴 시간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죽도록 달려야만 했거나 등에 사람을 태우고 하루종일 빙글빙글 돌아야 했던 과거는 멀리 흘려보냈기를 바랍니다. 생의 끄트머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두 마리 말이 앞으로 편안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평생 인간의 필요에 따라 착취당하고 마지막까지 버려진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했던 두 마리 말의 명복을 빕니다. 이러한 죽음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동물자유연대는 말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한 활동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