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원에서 폐사한 코끼리 10마리 가운데 사인이 '노령으로 인한 자연사'로 기록된 개체는 1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부분의 동물원은 관람 시간에 코끼리 내실 문을 닫아 두고 있었으며, 사육사들은 그 이유로 '동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관람객 민원을 꼽았다. 동물자유연대가 3일 전국 코끼리 사육시설의 사육환경을 점검해 발간한 「국내 사육 코끼리 복지 실태조사 보고서」가 비춘 국내 코끼리 사육의 어두운 이면이다.
코끼리는 육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자, 대표적인 고지능·사회적 동물이다. 야생 코끼리는 하루 15km에서 많게는 200km까지 이동하며, 하루 16시간가량을 먹이 활동에 쓴다. 그러나 동물원의 좁고 단조로운 공간은 이러한 코끼리의 습성을 충족하기 어렵고, 사육 코끼리에게서는 스트레스의 징후인 정형행동이 자주 나타난다.
이에 해외에서는 코끼리 사육을 중단하는 '엘리펀트 프리(Elephant-Free) 동물원'을 선언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사육 중이던 코끼리를 생크추어리로 옮기는 사례도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청주동물원이 코끼리 사육을 중단했고, 서울어린이대공원도 사육 중단을 예정하고 남은 코끼리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고래류 사육 금지 등 법령이 개정되는 동안에도 코끼리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보호에서 소외돼 왔다. 동물자유연대는 국내 사육환경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제도 개선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조사는 국내에서 코끼리를 사육하는 9개 시설을 대상으로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진행됐다. 조사진은 폐업 및 재개장 준비로 방문이 불가능한 1곳을 제외한 8곳을 직접 찾아 사육 공간과 바닥재, 수공간, 행동풍부화, 사회적 환경 등을 점검했다. 평가에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와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EAZA)의 기준을 바탕으로 만든 체크리스트를 사용했다. 또한 이학영 의원실을 통해 각 시설에 개체 현황과 인력 현황을 질의했다. 조사 결과 국내에서 사육 중인 코끼리는 총 22마리로 추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폐사 원인이 확인된 코끼리의 평균 수명은 32.1세로, 야생 아시아코끼리의 기대수명인 60~70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은 주로 심혈관·순환기 질환과 발·관절 질환으로 숨졌다. 동물자유연대는 이들 질환이 협소한 공간, 딱딱한 바닥, 운동 부족 등 사육환경과 깊이 관련돼 있다고 지적했다.
시설 간 사육환경 격차도 컸다. 코끼리 1마리당 야외 방사장 면적은 가장 넓은 곳이 4,980㎡, 가장 좁은 곳이 100㎡로 약 50배 차이가 났다. 현행 법정 최소 기준인 125㎡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 권장 기준(마리당 약 500㎡)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바닥과 수공간 등 기본 시설도 부족했다. 1곳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내실 바닥에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있었고, 모래를 따로 비치한 곳은 1곳뿐이었다. 성체 코끼리가 몸 전체를 담글 수 있는 수영장을 갖춘 곳은 한 곳(육안상 확인 가능한 범위 내), 진흙 목욕 공간을 갖춘 곳도 한 곳에 그쳤다.
2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설은 관람시간 동안 내실 출입문을 닫아 두어, 코끼리가 관람객의 시선을 피해 쉬거나 실내외를 스스로 선택해 오갈 수 없었다. 사육사들은 그 이유로 동물이 내실에 들어가 보이지 않으면 관람객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는 점을 꼽았다. 반면 영국은 2025년 개정한 '현대 동물원 운영 기준(Standards of modern zoo practice for Great Britain)'에 실내·외 방사장 모두가 필요한 동물에게 양쪽을 항상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청소·치료·극한 기상 등 정해진 경우 외에는 일상적인 출입 제한을 금지하는 조항을 담았다. 동물자유연대는 동물이 내실에서 쉬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라는 점을 관람객에게 알리고, 운영 방침이 민원에 따라 바뀌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교육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무리를 이뤄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인 코끼리를 홀로 사육하는 시설도 3곳이었다. 조사 시설 대부분에서는 몸을 반복적으로 흔들거나 같은 자리를 서성이는 정형행동이 관찰됐다. 행동풍부화 역시 타이어나 나무토막 등 기초 물품 몇 개를 비치하는 형식적인 수준에 머문 곳이 많았다.
관리 인력의 전문성도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코끼리만 전담하는 수의사를 둔 시설은 한 곳도 없었고, 수의사 1명이 수십에서 100여 종을 함께 맡는 경우가 많았다. 사육사도 계약직·임기제 비율이 높고 순환 보직이 잦아 코끼리 관리 전문성을 쌓기 어려운 구조였다. 일부 시설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발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코끼리 7마리를 보유한 국내 최대 사육시설인 제주 J시설에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확인됐다. 이 시설은 동물원 허가 없이 전시금지 유예신고만 한 상태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하루 4회 코끼리 쇼와 관람객 먹이주기 체험을 진행하고 코끼리를 목줄로 묶어 사육하고 있었다. 쇼 동작을 '행동풍부화'로 소개하고 있어, 관람객에게 동물복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물자유연대는 이 같은 문제가 개별 시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여러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현재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는 환경부 「동물원 관리·사육 표준 매뉴얼」의 핵심 항목을 의무 규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무화가 필요한 항목으로는 단독 사육 지양, 행동풍부화 제공, 긍정강화 훈련 실시 등을 꼽았다. 국제 기준을 참고해 최소 사육 면적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아울러 최초 허가 이후에도 사육환경을 주기적으로 심사하는 '동물원 허가 갱신제' 도입을 촉구했다. 기준에 미달하는 시설에서는 코끼리 사육을 엄격히 제한해 '엘리펀트 프리 동물원'을 늘려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홀로 지내는 코끼리는 적합한 시설로 옮겨 합사하는 방안을 점검하되, 이송 과정의 스트레스를 고려해 전문가 판단에 따라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자유연대 관계자는 "코끼리는 높은 지능과 복잡한 사회구조를 지닌 동물이지만, 국내 사육 기준은 그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종의 생태적 특성에 기반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코끼리를 돌보는 사육사들도 단독 사육 금지 등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이번 보고서가 동물원 코끼리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보고서 전문은 동물자유연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animals.or.kr/report/print?type=repo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