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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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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08.10
개고기 논쟁이 동물권에 대한 토론으로 확장되지 못하는 결과 낳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강나림 인턴기자 rubyshoe@empal.com
2003년 9월4일 저녁, 경기도 과천의 유명한 보신탕집인 향나무집. 당시 검찰청 쪽의 제안으로 ‘여성’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남성’인 송광수 검찰총장, 대검 검사장들간의 만찬이 열렸다.
강금실의 ‘보신탕 시험대’
![]() | ![]() △ 1980년대 \'남성적인\' 군사정권에 쫓겼던 보신탕집은 뒷골목에 자리를 텄다. (사진/ 한겨레) |
당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검찰 개혁’ 가도 속에서 대검 감찰권의 법무부 이양을 두고 양쪽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던 터였다. 이날 메뉴는 보신탕과 삼계탕, 오리고기였고, 식사가 끝난 뒤 법무부 공보관은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대해 “장관님은 보신탕을 먹는 시늉만 하고, 잘 드시는 것 같지는 않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보신탕집이었을까? 권김현영 한국성폭력상담소 간사는 이 상황에 대해 “여성들에게 터부시된 보신탕을 강 장관에게 먹임으로써 여성을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상하 위계가 철저하고 폭탄주 등 남성주의 문화가 만연해 있는 검찰조직. 남성성 표출로 살아남은 이 조직의 검사들은 낯선 여성 수장을 불편해했고, 강 장관을 ‘남성성 시험대’에 올렸다는 것이다.
이는 남성들의 보신탕 먹기를 ‘마치스모 현상’이라고 말하는 송복남 <월간 피플> 편집장의 시각과도 맞닿아 있다. 마치스모 현상은 남성이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할 기제가 없을 때 느끼는 갈등에서 비롯된다. 남성들은 이때 자신이 남성인 것을 과시하거나 과장하는 행위를 통해 남성성을 수시로 확인한다. 송 편집장은 “남성의 위치가 약화된 현대 사회에서 보신탕 먹기는 ‘남성 되기’의 일환”이라며 “남성들은 보신탕집에서 연대감을 갖고, 보신탕 먹기를 영웅담처럼 말하는 게 마치스모 현상”이라고 말했다.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종종 동물로 은유되는 사실에 주목한다. 남성의 여성 강간과 동물 도살 장면의 유사성,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번은 패야 말을 듣는다”는 속담 등 여성은 동서양의 남성 중심주의 사회에서 동물과 같은 취급을 받거나 학대의 대상이 돼왔다.
영국의 여권신장론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권리의 옹호>라는 책에서 여성의 교육적·사회적 평등을 주장하자, 이에 대한 조롱으로 나온 책이 <동물권리의 옹호>였다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익명(나중에 케임브리지의 철학자 토머스 테일러로 알려짐)으로 출판된 이 책은 ‘여성=동물’이라는 등식을 담고 있다.
육식에는 ‘사나이다움’이라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생태여성주의자인 캐럴 애덤스는 <프랑켄슈타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성 정치가 구조화되는 방식은 우리가 ‘소비되는 동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연관돼 있다. 육식은 남성 지배에 통합돼 있는 일부”라고 말한다.
![]() △ <동의보감>에 개고기가 기력을 더한다는 기록이 있지만, 한방 전문가들은 정력보다는 전체적으로 몸을 보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보고 있다. (사진/ 씨네21 이혜정 기자) |
역사적으로 성별 분업이 시작된 것도 육식과 관련이 있다. 원래는 남성과 여성이 모두 사냥을 했지만, 농경사회 이후에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사냥한 고기를 다듬고 농사를 담당했다. 문화인류학자들은 이런 영향 탓에 상당수 부족사회에서 여성들의 단백질 공급이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칼라하리사막의 수렵 채집인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은 단백질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식물성 음식과 메뚜기, 개미 등 곤충을 많이 먹는다고 한다. 여성들이 섭취한 단백질의 14%가 곤충에서 나올 정도다.
사람은 고기를 먹으면서 이것이 ‘한때 살아 있었던 동물’이라는 것을 잊듯이, 남성이 여성을 추행할 때도 살아 있는 인간이 아닌 동물로 대상화한다. 이 과정에서 고기는 여성이 되고, 고기 먹는 행위는 여성의 성을 갖는 행위로 은유된다. 서양에서 고기 한점은 남성들 사이에서는 섹스를 의미했고, 나중에는 매춘부를 가리켰다. 정육점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유곽’을 의미한다.
고기 한점은 섹스, 정육점은 유곽
여성환경연대의 소모임 ‘꿈꾸는 지렁이’는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의 개고기 식습관을 조사하고 있다. 이보라(25)씨는 “개고기는 여전히 남성 연대를 형성하는 지점”이라면서 “남성들은 개고기를 소비하면서 여자 이야기를 하고 여자의 몸을 동물화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개고기가 가장 ‘남성적인’ 군사정권에 의해 뒷골목으로 물러난 것은 참으로 아이로니컬하다. 정권안보 차원에서 올림픽을 유치한 전두환 정권은 미국 및 서구 국가의 여론을 의식해 1984년 ‘개 도살 및 식용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신탕집들은 대로변에서 쫓겨났다. 그해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서 개고기는 혐오식품으로 규정됐다. 서울시 고시94호에 따르면 보신탕은 뱀탕, 용봉탕, 굼벵이탕과 함께 아직까지도 영업금지 대상이다.
이때부터 군사독재가 지켜왔던 ‘친미주의’에 대한 반감은 ‘군사정권=사대주의=개고기 반대’ ‘개고기 찬성=반미 민족주의’로 기호화된다. 개고기 논쟁이 여태껏 동물권 등 생명의 존엄에 대한 토론으로 확장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생태주의자이자 동물운동가인 박창길 성공회대 교수는 “유럽의 여성주의자들은 동물학대 반대세력과 연대한다. 여성주의자들과 동물운동가들은 인간의 공격적 본성에 대해 성찰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며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는 운동은 외국 진보진영의 주요한 영역 중 하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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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상대주의는 진리인가 그간의 개고기 논쟁에서 식용 반대론자에게 날리는 KO 펀치는 ‘문화상대주의’였다. 논쟁은 보통 브리지트 바르도와 같은 동물운동가나 서구 언론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를 비판하는 데서 시작된다. 민족감정을 자극당한 한국 국민들은 “당신들은 달팽이도 먹지 않느냐”며 반박하고, 논쟁은 “개고기를 먹는 건 문화의 차이일 뿐 비판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문화상대주의로 정리된다. 하지만 임종식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원은 <개고기를 먹든 말든>이라는 책에서 문화상대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의 특성을 ‘기술’한 것일 뿐,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를 따라야만 하는 규범의 준거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문화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듯, 문화상대주의가 개고기 식습관의 유일한 방패막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고기를 먹는 게 윤리의 문제라면, 중세와 근대를 지배해온 ‘인간 중심주의’에 대해 회의해봐야 한다. 피터 싱어는 1973년 동물권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 <동물해방>에서 인간은 싼 가격에 고기를 먹기 위해서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전 생애 동안 가두는 등 비윤리적인 축산기술을 묵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간과 동물은 생태계의 평등한 구성원이며, 농경사회 때 가축이 등장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지배관계가 성립됐다는 시각이다. 정치적으로 채식주의를 선택한 이들도 이에 가깝다. 채식주의자들은 골프장 반대시위에 한번 참석하는 것보다 식습관을 바꾸는 게 지구 환경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지나친 육식은 가축의 비정상적인 증가를 가져왔고,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 배출로 인한 온실효과, 분뇨로 인한 수질 오염, 엄청난 곡물 소비 등으로 환경을 파괴해왔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생명과 환경>에서 “(개고기 논쟁에서) 서구의 문화패권주의에 대항하여 우리 문화를 지키자는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호응을 받고 있지만, 여기에는 동물에 대한 존엄, 자연과의 조화, 생태주의적 가치가 빠져 있다”며 “개의 존엄은 개고기 논쟁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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