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이야기
- 2025.09.25
2012년에 구조되어 온센터에서 13년의 세월을 보낸 황순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온센터의 오랜 식구였던 황순이의 평온을 바라며 황순이를 함께 기억해주세요. 황순이를 오랫동안 돌보고 지켜봤던 조영련 국장의 부고를 전합니다.
고집 세고 탈출의 여왕 이라 불리던 황순이가 긴 여정을 마치고 별이 되었습니다. 2012년 도심 로터리 한복판에서 구조되어 온 그날부터 오랜 시간 황순이는 늘 특별한 친구였습니다.
행당동 작은 보호소 시절부터 문틈과 담벼락을 비집고 나와 세상을 향해 달리던 황순이는 언제나 자유롭고도 씩씩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좋아하는 자리에는 끝내 주저앉아 버리는 황순이의 고집스러운 모습마저도 우리의 기억 속에 사랑스럽게 남아 있습니다.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은 계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봄날의 햇살 아래에서 산책을 하고, 여름날 폭우에도 견사 안에서 지긋이 바라보며 낭만을 느끼고, 가을의 낙엽을 밟으며 행복한 추억을 쌓고, 추운 겨울 함박눈이 온몸을 덮을 정도로 맞으며 즐길 줄 아는 멋진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점점 약해져 갔고, 오랜 투병의 시간을 견뎌 내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교차했습니다. 비틀거리는 걸음, 잠시 걷다 이내 주저앉는 모습으로 하루를 이어 갔지만, 숟가락으로 떠주는 밥은 남김없이 받아먹고, 여전히 산책을 향한 마음으로 힘겹게 발을 떼곤 했습니다. 그 느린 걸음 속에서도 황순이는 자신의 삶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황순이의 모든 시간을 소중히 기억합니다. 자유롭고, 고집스럽고, 사랑스러웠던 젊은 날의 황순이, 그리고 느리지만 세상을 향해 끝까지 걸음을 옮겼던 마지막 날들의 황순이까지. 이제 황순이는 더 이상 비틀거림 없이 자유로운 걸음으로 별빛 길을 달리고 있을 것입니다.
휴대폰에서 추억으로 뜨는 황순이의 예전 사진들을 하나하나 보았습니다. 보다 보니 명치가 콕콕 아프고 눈이 시려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황순이의 고집스러운 모습, 환히 웃는 모습들이 모두 소중하고 애틋합니다. 오랫동안 많이 슬프고, 보고 싶고, 그리워할 것 같습니다.
황순아, 너는 그동안 멋지게 잘 살아냈어. 정말 잘했고, 너무 대견해. 이제 가는 길은 오직 행복하기만 하기를 바랄게. 아픔 없는 곳에서 편안히 쉬기를 바라. 우리와 함께했던 날들을 잊지 말아 주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이 오면 꼬리를 흔들며 반겨 주기를 기다릴게. 그날이 오면, 우리 다시 같이 산책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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