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이야기

[부고] 본부 마당냥이로 살아가다 온캣에 입주한 아치가 별이 되었습니다.



2015년, 동물자유연대 본부 마당에 나타난 아치는 등장과 동시에 대장냥이로 자리 잡았습니다. 어느 날은 아픈 고양이가 마당에 들어와 쉬었는데, 아치는 그 고양이를 내쫓지 않고 옆에 앉아 함께 햇볕을 쬐는 늠름하고 여유로운 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열세 살이 된 아치는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그동안 활동가들은 아치의 삶에 최소한으로 개입해왔습니다. 경계심이 강한 아치가 영역을 벗어난 공간과 사람과의 접촉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내염 치료를 위해 입원을 시키고 본부 실내 공간에서 지내게 한 적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힘들어하는 모습에 늘 한 발짝 물러나 아치의 삶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아치를 돌보려면 많은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곁을 절대 내주지 않고 눈치도 빠른 아치는 약을 섞어둔 캔을 먹다 말고 자리를 뜨기 일쑤였습니다. 아치가 나타날 때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릇을 옮겨주어야 겨우 1회분의 약을 먹일 수 있었습니다. 아치의 몸과 마음만 편해진다면 다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결국 병원으로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아치의 질병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심한 빈혈과 신부전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고 2주간의 입원 치료 끝에 온캣으로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전부 진행했으니,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지내다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모두들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유롭게 살아가던 아치가 센터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실내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질병이 악화되는 것은 아닐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치의 삶을 과연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지. 그런데 나이가 들고 몸이 아파 기력이 약해져서였을까요, 다행히 아치는 이전처럼 실내 생활에 대한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계 태세는 여전했지만 캣타워에 올라가 있는 것을 좋아했고 포근한 쿠션과 담요도 잘 써주었습니다.

아치가 입주하던 날, 그저 남은 시간을 평온하게 보내다 떠날 수 있게 도와주자던 활동가들의 다짐은 함께한 시간 속에서 간절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보조제와 약을 하루에 7번 먹여야 했고, 담당 활동가는 하루 10번 이상 아치의 방을 찾았습니다. 센터에서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의 밀도는 높았습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돌보고 쓰다듬고 말을 건넸는데 어떻게 평온만을 바랄 수 있을까요. 아치의 시간이 연장되기를 욕심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약한 불씨를 에워싸고 붙잡아둔 6개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붙잡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심한 빈혈에 면역력이 떨어지며 다시 구내염 증상까지 나타났습니다. 열흘이 넘는 입원 치료 끝에, 결국 아치는 별이 되어 안온한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치의 빈 자리를 보며 가족과 집의 의미를 떠올립니다. 사랑으로 매일을 돌보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아치의 길 위 삶을 돌보던 본부 활동가들과 나머지 삶을 함께한 온캣 활동가들 모두 아치의 가족이었습니다. 온캣은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주고 편히 쉬어갈 수 있게 해준 아치의 집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가족들과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준 아치에게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본부 마당에는 여전히 아치의 친구들이 남아있습니다. 매일 사료와 물을 채워주고 자리를 정돈해 줍니다. 겨울에는 아침저녁으로 핫팩을 갈아주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그렇게 길 위의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그 삶을 같이 살아갑니다. 길 위의 생명들이 최소한의 보살핌 속에서 제 수명만큼 살아가기를 바라며 우리가 사랑한 길고양이, 마당냥이, 온캣 고양이 아치를 떠나보냅니다. 아치의 평안 그리고 길고양이들의 안녕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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