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ture Researchers] 고통 너머, 동물의 좋은 삶을 이야기하는 박진영 연구자
- 2026.08.23
- |
- 동물과미래포럼 사무국
Fuuture Researchers | 동물권 담론 독립연구자 박진영
고통받는 동물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해, 동물이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동물권 담론을 연구하는 박진영 연구자는 동물을 향한 선의를 사회의 규칙과 제도로 옮기는 일에 오래 마음을 쏟아 왔습니다. '무엇을 막을 것인가'를 넘어 '어떤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하는가'로, 다가올 다종 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려 온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Q.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원래부터 동물을 좋아했어요. 처음 만난 사람과도 동물 이야기가 나오면 저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이 풀릴 정도였으니까요.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지금과 같은 관심으로 이어진 것은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집을 떠나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마음 둘 곳을 찾다가 학교 근처의 휴메인소사이어티 동물보호소(Humane Society Animal Shelter)를 알게 됐어요. 정기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구조된 동물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동물이 겪는 고통과 우리가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자연 속 작은 대학도시에 자리해 있어 경계동물을 비롯해 야생동물을 만날 기회도 제법 많았어요. 보호소에서 주로 동물의 고통을 봤다면, 자연에서 만난 동물들은 제게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기 이전에, 저마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존재였어요. 어디로 갈지 정하고, 먹이를 찾고, 다른 동물과 관계를 맺으며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고통받는 동물을 돕고 싶은 마음이 컸다면, 점차 동물이 자기 삶을 자기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잘 살아가는 동물들을 만난 경험이 오히려 제 시야를 넓힌 셈이죠. 그렇게 관심이 동물구조와 보호에서 동물의 삶 자체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동물권의 문제로 옮겨갔습니다.
Q. 2021년 앨러스데어 코크런의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Should Animals Have Political Rights?)을 오창룡 교수님(국립부경대 정치학)과 함께 번역하셨어요.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는 동물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관심이 철학의 범주를 넘어선 게 많지 않았는데,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A. 미국에 다시 체류하면서 동물보호와 동물권 운동의 저변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체감했어요. 오랜 역사를 가진 해외 동물보호단체들을 살펴보다 보니 한 가지 패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조와 교육에서 출발했지만, 수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활동을 이어 온 단체들은 동물학대 조사와 입법 제안, 정책 개입처럼 공적 책임과 법제도의 영역으로 활동을 넓혀 가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동물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을 어떻게 사회의 규칙과 제도로 옮길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선의와 윤리 의식으로 동물을 위해 애써 왔지만, 동물의 이용과 착취를 지탱하는 사회, 법, 정치의 구조는 좀처럼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 역사를 보면서 도덕적 호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선의가 있어야만 작동하는 보호가 아니라, 개인의 선의가 없어도 일정한 기준이 작동하는 법적,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동물의 이해관계를 공적인 문제로 끌어올리고 정치와 법의 언어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그만큼 절실해졌습니다.
동물권에는 다른 권리운동과 조금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사자가 요구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아마도 유일한 권리 운동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권리운동에서는 오랫동안 배제돼 온 당사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동물은 인간이 만든 정치제도 안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직접 주장하거나 대표자를 선택할 수 없어요. 자기 삶에 중요한 것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것을 정치적 요구로 만드는 일은 구조적으로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동물권에서는 ‘대표’의 문제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마주할 다종공동체를 제대로 준비하는 일은 국내의 동물 담론이 철학적, 윤리적 질문에서 정치와 제도의 문제로까지 나아가는 데서 시작한다고 봤습니다. 그런 쟁점을 시의적절하게 던지는 책을 찾다가 정치철학자 앨러스데어 코크런의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을 만났습니다.
코크런은 동물에게도 그들 자신의 중요한 이익에 근거한 기본권이 있고, 그것을 개인의 선의에만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질문도 바뀌게 됩니다. ‘동물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그들의 이해관계를 누가, 어떤 절차와 장치로 공적으로 대표할 것인가로요.
이 지점이 제가 생각해 온 실천의 방향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동물을 좋은 마음으로 보호하자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이해관계가 실제로 정책과 법을 만드는 과정에 들어오게 하는 것. 당시에는 국내 동물운동 담론에 이런 정치적 질문을 하나 더 가져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창룡 교수님과 함께 이 책을 번역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습니다.
박진영 독립 연구자가 번역 작업을 한 책들. 철폐주의 이론가인 게리 프랜시온의 『Why Veganism Matters』(오른쪽)이 곧 출판될 예정이다.
Q. 곧 새로운 번역서를 내신다고요?
A. 얼마 전 게리 프랜시온의 『Why Veganism Matters: The Moral Value of Animals』 번역을 마쳤습니다. 한국어 제목은 미정이고요.
앞서 코크런의 책에서 동물의 이해관계를 정치와 제도 안에서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번 책은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동물을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할 때, 실제로 어디까지 달라져야 하는가, 동물권 운동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프랜시온은 이 질문을 아주 선명하게 던지는 법철학자예요.
그의 출발점은 “동물의 재산적 지위”입니다. 동물이 법적으로 인간의 소유물인 한, 복지를 아무리 개선해도 동물을 인간의 목적을 위해 이용해도 된다는 전제는 남는다는 것이죠. 더 넓은 우리나 더 ‘인도적인’ 사육과 도살이 당장의 고통을 줄일 수는 있어도, 동물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관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프랜시온이 동물복지의 개선보다 동물 이용의 폐지를 운동의 방향으로 분명하게 제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프랜시온에게 동물권의 핵심은 동물에게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주자는 데 있지 않습니다. 최소한 재산이나 자원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도 지켜야 할 선이 생긴다는 것. 저 자신이 곱씹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얼마나 편안하게 이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애초에 다른 존재를 우리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아도 되는가를 묻게 되는 거죠.
이 지점에서 비거니즘도 전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프랜시온에게 비거니즘은 여러 윤리적 생활방식 가운데 하나도, 개인의 취향이나 소비 선택도 아니에요. 동물을 도덕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면 그들을 먹고 입고 쓰는 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일관성이라는 의미에서 도덕적 기준선(moral baseline)입니다. 그래서 그는 비거니즘을 동물 이용을 폐지하는 운동의 출발점이자, 지금 각자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행동으로 봅니다.
이 주장은 동물운동 내부에서도 꽤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더 나은 사육환경, 더 적은 고통, 더 강한 규제를 요구해 왔어요. 모두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하지만 프랜시온은 거기서 한 번 더 묻습니다. 그 변화가 동물을 이용해도 된다는 생각을 약화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이용의 방식을 조금 더 받아들이기 쉽게 만들고 있는가.
이 책을 옮기려는 이유도 그 질문의 힘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동물운동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확인하게 하는 일종의 기준점 같은 책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언가를 조금 낫게 만드는 데 그치는지, 아니면 우리가 끝내 바꾸고 싶은 관계 자체를 향하고 있는지를 묻게 하니까요.
Q. 우리나라의 동물 담론과 동물 운동에 대한 시사점도 얻으셨을 거 같아요.
A. 우리 동물운동은 오랫동안 동물이 겪는 고통을 드러내고 폭력을 고발하는 데 큰 힘을 써 왔습니다. 꼭 필요한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막을 것인가와 함께, 어떤 세상을 열고 어떤 삶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도 이야기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동물을 고통이라는 틀 안에서만 바라보면, 그들은 결국 피해자 자리에만 놓이게 됩니다. 인간은 가해자, 동물은 피해자라는 도식이 유일한 렌즈가 되면, 동물의 삶은 인간이 무엇을 했느냐로만 정의되죠.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것은 막아야 할 고통만이 아닙니다. 동물에게는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만한 삶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줄이는 것과 좋은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같은 질문이 아니에요. 학대와 착취를 막는 데서 더 나아가, 동물이 자기 방식으로 살아갈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까지 물어야 합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실천뿐 아니라 법과 제도, 우리가 동물과 맺는 관계의 방식까지 함께 들어옵니다.
우리 동물 담론에는 이 두 번째 시선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서, 어떤 삶이 계속될 수 있어야 하는가까지 묻는 것. 그렇게 동물운동의 외연을 넓히는 일이야말로 다가올 다종공동체의 밑그림을 그리는 첫걸음이라고 봅니다.
Q. 동물과 미래 포럼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A. 서로 다른 학문적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만나 각자의 관점을 잇고, 동물을 위한 방향을 함께 모색한다는 것 자체가 참 반갑습니다. 다가올 다종공동체를 준비하려면 어느 한 분야의 언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여러 갈래의 지식과 경험이 만나 앞으로의 길을 함께 그려 갈 자리가 마련되어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아무쪼록 이 포럼이 유의미한 논의를 꾸준히 쌓아 가면서, 훗날 돌아보았을 때 우리나라 동물운동의 다음 장을 함께 써 내려간 공동 저자로 남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