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Insight] 어제의 동료가 적이 될 때
- 2026.04.22
- |
- 동물과미래포럼 사무국
Animal Insights | 침팬지 '내전'이 보여준 전쟁의 기원
원문읽기 I Sandel et al. (2026). Lethal conflict after group fission in wild chimpanzees. Science.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 응고고 지역의 침팬지의 서쪽 무리가 중앙 무리 한 마리를 둘러싸고 공격하고 있다. ©Aaron Sandel/Science🐮 핵심 내용은?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의 응고고(Ngogo) 지역의 거대 침팬지 무리가 두 집단으로 영구 분열한 뒤, 과거의 동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전쟁’이 관찰됐다. 종교나 이념 같은 ‘문화적 표지’ 없이도 사회적 유대망의 변화와 집단 정체성 형성만으로 내전이 발생할 수 있음을 30년 치 데이터로 입증했다.
- 200마리 이상의 세계 최대의 단일 침팬지 집단이 2015~2018년에 걸쳐 서쪽(주홍색)과 중앙(파란색) 무리로 쪼개졌다.
- 분열 이후 7년간 서쪽 집단은 중앙 집단을 공격해 수컷 성체 7마리, 새끼 22마리를 살해했다.
- 살해된 개체 중에는 수십 년간 함께 지냈던 옛 동료와 그들의 새끼들이 포함됐다.
서쪽 무리(주홍색)와 중앙 무리(파란색)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그린 그림. 점차 상호작용이 줄어들면서 다른 집단으로 분열된다. ©Aaron Sandel/Science🌐 상세 분석
침팬지 사회의 양극화와 분리
침팬지 무리는 보통 50~100마리 규모이나, 우간다 키발레 국립공원의 응고고 무리는 200마리가 넘는 예외적인 거대 사회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서쪽 무리와 중앙 무리를 오가며 사회적 접착제 역할을 하던 주요 개체들의 죽음과 전염병 등으로 2015년을 기점으로 사회적 연결망이 양극화되기 시작했고, 2018년에는 공간과 번식이 완벽히 분리된 두 집단으로 영구 분열됐다. 30년 전부터 함께 자라고 유대를 쌓았던 개체들이 단 몇 년 만에 남보다 못한 사이로 갈라선 것이다.
피의 순찰… 동료를 표적으로 삼다
분열 이후 발생한 갈등은 '내전'의 양상을 보였다. 숫자가 훨씬 적은 서쪽 무리는 집요하게 중앙 무리의 영토를 침범해 기습 공격을 펼쳤다. 이들은 과거에 함께 사냥하고 털을 골라주던 옛 동료를 찾아내 무참히 살해했다. 살인은 7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한때의 결속은 가장 잔인한 적대감으로 치환됐다.
전쟁의 기원 - 두 개의 관점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첫 번째 관점은 인간의 전쟁이 종교, 민족, 국가, 이념과 같은 문화적 차이에서 시작한다고 보았다. 반면, 다른 관점은 '인간 문화'의 요인 없이 행동학적, 사회적 진화 속에서 전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 관점에서 전쟁은 '인간'에 이르러 기원하고, 두 번째 관점에서 전쟁은 사회적 관계를 맺는 동물에서 보편적이다. 이번 연구는 두 번째 관점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응고고의 침팬지들은 문화적 차이 없이도 '우리'와 '그들'이라는 선을 긋고 조직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연구진은 주요 매개 개체의 죽음과 전염병 등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그 자체가 집단 폭력의 충분한 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AFF's Comment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전쟁은 우리 안에 악마가 있는지 되묻게 한다. 우리는 흔히 전쟁의 원인을 복잡한 종교적 갈등이나 이념적 대립에서 찾는다. 하지만, 이 논문이 보여주는 '전쟁의 기원'은 거창한 명분이나 문화적 차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다. '우리'라는 울타리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그들'로 낙인찍는 지극히 '원초적인 관계'의 균열에서 시작된다.
진화생물학에서는 전쟁이 역설적으로 집단 내부의 '이타주의(Altruism)'와 사회적 협력을 진화시킨 핵심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외부의 적에 맞서 생존하려면 내부 구성원 간의 강력한 결속과 자기희생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응고고 침팬지들의 사례는 이 씁쓸한 진화적 가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침팬지들의 전쟁에는 종교나 이념 같은 거창한 '문화적 표지'는 없었고, 단순히 사회적 관계망이 재편되는 것만 있었다. 폭력성과 이타심이 어떻게 동전의 양면처럼 진화해 왔는지 보여준다.
인간은 문화를 통해 전쟁을 정당화한다. '이번 전쟁은 이슬람 공동체를 구원하기 위한 성전이다' '독재 정권, 문명사회의 적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이다'… 그러나, 침팬지들의 사례는 문화 이전에 이미 우리의 유전적·사회적 역동 속에 전쟁이 깊이 내재해 있음을 상기시킨다. 현재의 국제 분쟁들 역시 본질은 문화의 충돌이 아니라, 공존의 연결망이 무너진 자리에서 분출되는 폭력 아닐까. 침팬지의 내전은 내집단을 향한 맹목성이 어떻게 타자를 향한 죽음의 기술로 변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 남종영 운영위원(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