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자유연대 : 집념의 승리 - 삼색이 구조에 성공하다

사랑방

집념의 승리 - 삼색이 구조에 성공하다

  • 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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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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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의 승리 - 삼색이 구조에 성공하다

거두절미하고 드디어 삼색이 구조에 성공하였습니다.

한참 아랫글에 댓글로만 언급이 되어 이와 관련된 소식을 모르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는데...
지난 금요일, 병원에서 케이지 문을 여는 순간 탈출하여 도망쳤다는 어이없는 뉴스가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하였습니다.

워낙 안 잡혀주는 터라 집안으로 들여놓기 작전은 성공하지 못했었지만 1년이상 사무실에서 밥을 주며 돌보아온 고양이로 남다른 정이 들어있기에 낯선 곳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는 최악의 상황은 정말이지 막고 싶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다음 냥이네 카페 등에서 고양이 탐정으로 알려진 \'고넹이\'님께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 시간이 나셔서 사건 발생 다음날인 토요일 바로 구조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구조 작전 첫날 : 위치 추적

처음은 아주 순조로왔습니다. 주변 탐색 2시간 만에 삼색이를 발견했고, 삼색이가 숨어있는 아지트까지 파악이 되었습니다.
마치 버려진 집터와 같은 건물 뒷마당 담벼락 위에 우두커니 앉아 큰길가를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마냥 겁에 질려 정신없이 뛰어넘어 들어온 바로 그 곳이었습니다- 바라보고 있는 삼색이의 뒷모습을 보니 너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마하는 다짐이 절로 생기더군요..

구조 작전 둘째 날

다음날 잠복에 들어갔지만 삼색이가 우리를 무척 많이 애먹였습니다. 일단 코빼기도 안비치고 숨어있다가 밤 10시가 되어서야 슬그머니 나오는 거였습니다.
고넹이님이 맛난 냄새 풀풀 풍기는 음식과 사료를 넣은 트랩을 위장시켜서 삼색이가 아지트에서 나와 반드시 지나쳐야만하는 그 길목에 놓았습니다.
이 때가 오후 3시 정도였습니다.
설치한지 두 시간 만에 생뚱맞은 다른 고양이가 걸려들 정도였지만(다행히 삼색이 아지트는 지하 쪽이라 다른 고양이가 트랩에 걸려든 것까지는 눈치를 못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삼색이 이놈은 그림자도 안비치더군요.
결국 냉정하기 그지없게도 트랩을 지나쳐 어제 처음 발견했던 그 담벼락 위에 턱하니 올라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고넹이님도 엄청난 정신력이라면서 혀를 내둘렀지요.

잠복 첫날 새벽 12시 30분 경에 그렇게 마감되었습니다.

구조 작전 셋째 날

본격적인 구조작업을 시작한지는 불과 하루 되었을 뿐이지만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이제 포기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이 날은 유난히 주변환경의 방해공작도 많았고 이리저리 끼어들어서 뭐하냐 물어보는 사람도 많아 혼란스러운 분위기였고
삼색이 이녀석도 건물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담 뒤로 앞으로 계속 자리를 바꾸어가며 아주 사람 진을 뺐습니다.

결국 월요일도 12시까지 소득없이 고넹이님 밤참거리나 좀 사다주고 저는 집으로 돌아왔지요.

집에 도착해서 손을 씻고 막 옷을 갈아입으려는 찰나, 진짜 그 순간 고넹이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삼색이가 큰길 보도 쪽으로 나와 동네 뒤쪽으로 가려고 하니 빨리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는 걱정보다는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사람 갖고 노는 듯한 삼색이의 영악스러움이 치가 떨릴 지경이었고, 그래 그렇게 잡히기 싫으면 거기서 살수밖에 없지 하고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였습니다.
일단 동네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테니까요.
애초에 가장 걱정했던 것이 건물 뒤뜰에 갇혀 나오지 못하거나, 앞으로 나오면서 큰 길에 뛰어들어 죽을지도 모를 가능성이었거든요
하지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인지 소망인지 때문에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현장으로 갔습니다.

도착해서 삼색이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넹이님이 병원 뒤편 교회 정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삼색이를 몰아서 다시 제자리에 돌아오게 했다는군요.
이후 30분~1시간마다 녀석이 쪼르르 달려나왔다가 다시 돌아와 숨기를 반복했습니다.
두 개나 동원된 트랩은 모두 무용지물이었고, 유인물로 놓은 사료와 고기에는 입도 대지 않았습니다.
역시 보통 영리한 놈이 아니고 완전 사람 머리 꼭대기에 있는 놈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또한 트랩 설치해놓은 곳에 소변을 보려는 취객(진짜 *새끼라는 욕이 절로 나왔다는)을 말리려다가 뒤쫓아온 술집 마담과 한판 싸움이 날 뻔 했다기보다는 한 대 맞을 뻔했지요.

그러다가 고넹이님이 마지막 작전을 고안해냈습니다.
삼색이가 좌우로 오락가락하는 건물은 뒤 쪽으로 폭 60센티미터 정도의 좁은 통로가 있습니다.
통로 양 끝 중 한 쪽은 제 가슴 높이만큼되는 시멘트 벽이고 다른 한 쪽은 철창문입니다.
철창문 쪽에 자루 입구를 댑니다. 삼색이가 아지트에서 나와 시멘트 벽쪽으로 내려오면 제가 그 쪽으로 달려가 겁을 줍니다. 건물과 나란히 있는 담벼락은 삼색이가 타고 올라가거나 점프를 하기에는 높아 삼색이는 자루 입구를 댄 철창 문 쪽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최대한 정신사납게 겁을 줘서 삼색이가 앞뒤 못보고 자루 속으로 저도 모르게 뛰어들어가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자루 입구는 고넹이님이 맡아서 처리하구요.

이건 만약 삼색이가 저보다 반응이 빨라 큰 길 쪽으로 새버리면 완전 끝장나는 거였습니다.
운동신경이 둔한 저로서는 엄청 긴장되고 떨리는 일이었어요.

이때가 새벽 4시 였습니다.
퇴근하고나서 이때까지 등 한 번 제대로 펴고 앉아보지 못해 척추에 무리도 장난 아니었는데,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니 삼색양을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다가 나왔다는 고넹이님의 신호를 받고 삼색이는 안 보였지만 정신없이 뛰어들어갔습니다. 한참 난리치다보니 어디에서 나왔는지 통로 중간 쯤에서 얼어붙어있는 삼색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벽을 정신없이 두드리고 손전등을 비추니 담으로 뛰어올랐지만 넘어가지는 못하고, 결국 우리의 의도대로 자루 쪽으로 냅다 뛰더군요.
들썩 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나더니 잡았다고 소리지르는 고넹이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다른 삼색이였던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안드는 것도 아닙니다만 90% 이상은 확실한 듯합니다.
대충 주변 정리까지 다 하고 나니 새벽 4시 30분이 넘었더군요.
삼색이는 일단 고넹이님에게 맡기고 나중에 그 쪽에서 픽업하여 병원에 데려가기로 했습니다.

저의 주말과 밤잠과 사비를 투자하여 너무 힘들게 보낸 이틀간이었지만 마음은 너무 개운하네요. 정신도 너무 말똥하구요.

이제야 두다리 뻗고 잘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만원도 주웠답니다..ㅋㅋㅋ..대단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근 3일간 그 곳에서 밤을 새면서 그곳에서 만난 많은 길냥이들이 눈에 밟힙니다. 다들 어린 고양이들이고 하나같이 비쩍 마른 것이...

무늬는 다르지만 사무실 은비와는 정말 똑같이 생긴 노랑이, 나란히 주차된 차 밑바닥에 똑같이 나란히 누운 턱시도 냥이 두마리, 25시 병원 앞에서 그저께 밥줬던 태비 2마리 등등이요...

고앙이는 고양이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원망하지는 않겠지만, 마땅히 먹을 것도 없고 온갖 위험이 난무하는 대도시에서의 삶이란 고양이에게 너무 외롭고 험난한 길인 듯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