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발생한 럼피스킨병으로 살처분한 소 중 약 91%가 고통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동물자유연대는 국내에 럼피스킨병이 처음 발병한 2023년 10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의 살처분 내역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국 총 108개 농가에서 살처분한 한우 및 젖소 6,416마리 중 5,859마리가 고통사한 것을 확인했다.
이번에 럼피스킨병이 발생한 지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경기도 시흥시·여주시·포천시·파주시·연천군·수원시·화성시·김포시·평택시,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고성군·횡성군·양구군, 경상북도 예천군·김천시·경상남도 창원시, 전라남도 신안군·무안군, 전라북도 임실군·고창군·부안군, 충청북도 청주시·충주시·음성군, 충청남도 서산시·부여군·예산군·청양군·아산시·논산시·홍성군·태안군·당진시로 총 34곳이다.
이 중 충남 당진시(484마리 살처분)와 경북 김천시(13마리 살처분)에서만 마취제가 함께 사용됐을 뿐, 30개 지자체에서는 동물에게 고통사를 유발하는 근육이완제만 단독 사용됐다.
나머지 2개 지자체인 강원 철원군(13마리 살처분)은 약물사용법으로 살처분을 했으나 약물 정보는 부존재하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약물 정보를 비공개한 전남 신안군(60마리 살처분)의 경우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석시닐콜린류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지역에서 살처분한 73마리를 포함하면 고통사한 비율은 92%에 달한다.
럼피스킨병 긴급행동지침(SOP)은 약물사용법 살처분 시행 시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약물(자일라진+염화트리메칠암모늄메칠렌, 바르비투르산염 등)을 사용하게끔 제시하고 있다. 약물로 안락사를 진행할 때에는 의식을 확실히 잃게 한 뒤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특히 동물의 고통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육 마비보다 의식 상실을 위한 조치를 먼저 취해야만 한다.
동물보호법 제13조(동물의 도살방법)에서도 가축전염병 예방법에따라 동물을 죽이는 경우에는 반드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도살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럼피스킨병 살처분의 경우 거의 모든 지자체가 동물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근육이완제를 단독 사용했다. 지침과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것이다. 마취를 하지 않고 석시닐콜린, 석시콜린, 썩시팜 등 석시닐콜린류 약품을 사용할 경우 동물이 사망하기까지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 때문에 미국수의학협회 안락사 지침은 척추동물 안락사 시행 시 석시닐콜린류 단독 약물 사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있다.
매년 가축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따른 살처분 문제 역시 반복해서 제기되어왔으나, 농장동물의 고통스러운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한 지침마저도 현장에서 이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위반하더라도 제재할 근거 또한 없다.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 인간에 의해 살처분 되는 생명이 최후의 순간 고통을 겪게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일 것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살처분 과정에서 농장동물이 고통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가축전염병예방법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이 살처분을 명령할 수 있게끔하는 조항만 있을 뿐, 지자체의 잘못된 살처분을 예방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살처분 과정에서 농장동물이 고통스럽게 죽는 일을 막기 위한 고통사 방지 의무 조항이 신설되어야 한다. 이에 동물자유연대는 아래와 같이 요구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가축전염병 발생에 따른 살처분 범위를 최소화하고, 살처분 시행 시 고통사 방지를 위한 법적 규정을 마련하라!
동물자유연대
동물자유연대
2024년 1월 17일